높은 세율에 가업승계조차 어려워
제도취지 살리며 성장기틀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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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치권에서 상속세 논의가 활발해졌다. 자산불평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한 상속세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세목이다. 다만 상속은 자녀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경제적 인센티브로 전환하는 강력한 힘을 통해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산 불평등 개선과 함께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상속 관련 제도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현행 상속제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이 매우 크고, 부동산 가격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과다한 상속세가 본래 목적인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효과보다 경제적 양극화를 심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집 한 채를 보유한 중산층이 높아진 집값과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자식세대에게 주택을 물려주지 못해 중산층 지위를 잃게 되며, 이러한 주택을 소득분위 최상위층이 사들이는 경우다.
따라서 불평등 개선 목적을 고려하면 최고세율뿐 아니라 전체적인 세율을 조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세수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상속·증여세를 통한 세수가 높은데, 이는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세를 통한 세수 비중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초공제를 높일 경우엔 소득 불평등 개선효과는 유지할 수 있지만, 세수 부족 문제 해결에는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세율 조정 문제는 소득세나 부동산 보유세, 새로운 세원 발굴 등을 포함한 세제 전반의 종합적 개편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한편 상속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관점에서 현행 과다한 상속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작년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수익률을 보였다. 예컨대 작년 1년 수익률 기준으로 일본 닛케이(19%)나 상하이종합(13%)과 달리 코스피(-9.6%)와 코스닥(-21.6%)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실제로 재무 분야 최고 권위인 ‘저널 오브 파이낸스’(Journal of Finance)의 2015년 한 연구에서는 가족승계를 앞두고 있는 그리스 기업들에서 40% 이상의 투자 감소, 매출성장 둔화가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2010년 ‘아메리칸 이코노믹 리뷰’(American Economic Review)에서 38개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 역시 상속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가족기업의 투자를 낮춘다는 결과를 제시했다. 따라서 이는 도덕적 문제라기보다 제도적 문제로 봐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주식시장에 투자를 줄이고 미국시장 등 해외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문제로 혁신성과 수익성을 들고 있는데, 가업승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은 혁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부모세대에서 획득한 유형, 무형의 자원은 이에 기반하여 더 진보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초가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가업승계에 관한 제도가 있지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 예컨대 5년간 40% 이상 자산처분 제한이나 90% 이상 고용유지 요건은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맞지 않아 보인다. 가업승계 후 10년 이내 자산 처분 시 시기와 사유에 따른 차등과세를 도입하고, 고용유지 및 혁신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병행하여 기업의 유연성과 제도의 취지를 조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가업승계를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설정하여 성장과 혁신을 위한 기틀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주식 상속과 현금 및 부동산 상속 재산을 분리하여 과세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대기업의 경우 글로벌 시장점유율,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의 경우엔 특허 수 또는 연구개발투자비중 등과 같은 정량적 지표를 통한 관련 지식 및 역량 보유 기준, 그 외 기업의 경우에는 지역사회공헌인증과 같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 및 활동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가업승계를 원활히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지금처럼 가업승계를 포기하거나, 새로운 기업으로 기술만 이전하여 피고용인들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등의 부작용을 줄이면서도 기업의 영속성과 혁신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상속세를 기부문화 촉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엔 피상속인 생전의 공익재단 기부금을 상속재산 산정 시 공제해주는데, 회계 투명성이 보장되는 공익재단에 한해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상속제도의 전반적 개편을 통해 중산층이 강화되고, 우리나라 경제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