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위험가중자산 관리 강화…5대 은행 잔액 8% 넘게 떨어져

기술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은행권의 신용대출이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위험가중자산(RWA) 관리를 강화하면서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기술금융 잔액이 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속적으로 기술금융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의 보수적 대출 기조로 기술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기술금융 실적을 점검하는 등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설 방침이다.
10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은행권의 기술신용대출잔액은 약 302조2948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306조1169억 원)보다 3조8221억 원(1.2%) 감소한 규모다. 같은 기간 5대 은행의 대출 잔액은 172조1807억 원에서 157조3785억 원으로 15조4022억 원(8.6%)이나 줄었다.
기술신용대출은 기술력을 보유했지만 자본이 부족한 기업이 돈을 빌릴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하지만 기술력이 없는 기업들이 혜택을 받는 사례가 다소 발생하면서 제도에 구멍이 생겼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는 기술신용평가(TCB)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기술신용대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 결과 대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5대 은행의 기술금융 위축 속도가 유독 빠르다는 점이다. 애초 우려했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을 향한 자금 공급이 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중소기업계에서는 앞으로 기술금융의 문턱이 더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은행권의 기술금융 위축 배경에 RWA 관리 강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강달러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이에 따른 수출입 기업 상환능력 저하까지 이어지면서 은행들이 올해 기업대출에서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 순위로 두고 있다.
은행들은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이라는 과제까지 떠안으면서 RWA를 낮게 관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밸류업 추진을 위해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일정 수준(12.5%)으로 관리하려면 RWA를 낮게 관리하는 게 유리하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기술금융 대출의 경우 담보력이 낮고 시장 변동성에 취약하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는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축소할 수밖에 없다"며 "자체 기술력을 인정받아도 매출이나 담보가 부족하면 대출 승인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제도 개선 대책을 준비 중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기술금융 실적을 평가하고 있다"면서 "기술신용대출이 본래 취지에 맞게 활용될 수 있도록 금융당국은 신용정보법 개정을 추진해 은행들도 TCB사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근거를 마련하는 등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