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 신물질 ‘중성미자’ 연구 서둘러야

입력 2025-03-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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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영 과학칼럼니스트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라는 오스트리아 출신 이론 물리학자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학문적 후계자로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물리학자로, ‘파울리의 배타원리’로 194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파울리는 학문적 업적과 더불어 독특한 성격, 뛰어난 유머 감각 덕분에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한번은 팔이 부러져 깁스를 했는데 이 때문에 줄곧 팔을 45도 각도로 올리고 다녔다고 한다. 파울리는 이 상황을 무척 불편하게 여겼는데, 이유는 이 자세가 마치 나치식 경례를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치를 극도로 싫어했던 파울리는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자신은 나치가 아니라는 것을 계속 강조하며, 이 자세를 취할 때마다 매우 곤혹스러워했다고 한다. 파울리의 유머스러운 성격과 함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파울리는 원자 내 전자의 배치와 관련된 배타원리 외에도 굵직굵직한 연구 성과를 여럿 남기면서 양자 및 입자 물리학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중성미자(neutrino·기호 ν)의 존재를 예측한 것도 이 중 하나다. 파울리가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 중에 “나는 지금 물리학자들이 존재를 증명할 수도 없고, 관측할 수도 없는 입자를 제안하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구절이 들어 있을 정도로 이 입자의 존재는 매우 파격적인 가설이었다. 파울리가 이 입자의 존재를 예측한 게 1930년인데, 실험적으로 중성미자가 발견된 것은 30년 가까이 지난 1956년이었으니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기분이 이해된다.

지구 내부·해양 속에서도 신호 주고받아

중성미자는 기본 입자 중 하나로, 매우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선 중성미자는 질량이 매우 작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입자의 최대 질량은 8eV(전자볼트)다. 이는 1을 1조로 세 번 나눈 수준이니, 중성미자의 질량은 거의 제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량이 이렇게 작기 때문에 실험적으로 개별 중성미자에 대한 중력의 효과를 측정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

중성미자를 이용하면 지구 내부나 해양 깊은 곳에서도 신호를 주고받는 게 가능할 수 있다.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낯선 곳으로 갈 때 혹은 웬만큼 복잡한 골목길을 지날 때도 크게 헤매지 않는다. 이유는 지구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위성들 덕이다. 즉,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면서 자신의 위성의 위치와 시간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스마트폰과 같은 수신기가 이 신호를 받아 위치를 추정해 길을 안내한다. 그런데 GPS 신호가 닿지 않는 심해나 벙커 혹은 우주 공간에선 어떻게 길을 찾을까? 중성미자를 이용한 내비게이션을 만든다면 가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입자는 다른 물질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아 장애물을 뚫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중성미자는 지구, 바다, 고밀도 구조물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상당한 흡수나 산란(튕겨 나감) 없이 통과할 수 있다. 중성미자가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다.

중성미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또한 쿼크와 같은 내부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렙톤(Lepton)이다. 따라서 전하를 가진 물질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이나 강한 상호작용(쿼크와 작용하는 힘)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때문에 중성미자는 중력과 약한 상호작용, 이 중에서도 주로 후자에 의해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 확률이 대단히 낮다. 왜냐하면 약력은 아주 짧은 거리에서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중성미자가 물질 속을 통과할 때 핵이나 전자에 아주 가까이 접근해야만 산란(튕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반응이 일어날 확률은 거의 없다. 일례로 태양에서 발생한 중성미자는 납으로 된 벽을 1광년(약 9조5000억 km) 두께로 쌓아도 대부분 그대로 통과할 정도다. 원자와 원자핵의 크기 비율은 잠실 운동장 한가운데 공이 하나 놓여 있는 정도에 비유할 수 있다. 그러니 중성미자가 핵이나 그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와 부딪힐 확률이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원자로 내부 감시 가능…기술개발 시급해

중성미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인공적으로 생성할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중성미자 내비게이션을 구현하려면 입자가속기나 원자로에서 인공적으로 생성한 중성미자를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태양, 초신성, 대기 등에서 나오는 자연 중성미자는 신호가 매우 약해 검출이 어렵고, 생성 패턴도 일정하지 않아서 원하는 방식으로 데이터를 실어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원자로나 가속기를 통해 인공적으로 중성미자를 만들어내는 경우 우리가 원하는 특성을 갖도록 조정할 수 있어 기술 개발에 훨씬 더 유리하다. 그리고 한발 더 나가 원자로 내부의 플루토늄 생성량을 모니터링을 통해 확인해 핵무기 개발이나 불법적인 핵활동을 감시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중성미자 연구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중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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