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합병(M&A)시장에서 대어급으로 손꼽히는 매물들이 잇따라 인수 의지를 밝힌 기업들의 포기로 좌절되고 있다.
이는 '금호아시아나의 교훈' 등으로 최근 기업들이 M&A에 더 없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어렵게 도전 의사를 밝히거나 내부검토를 하던 기업들도 시장의 평가가 냉정하면 어지 없이 돌아선다.
최근 잇따라 불발된 효성의 하이닉스반도체, STX의 대우건설 인수 검토와 철회 과정도 이러한 패턴을 잘 보여준다.
반면 롯데의 GS리테일의 백화점·마트 사업부 인수, 현대중공업의 현대종합상사 인수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중소형 M&A에 기업들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이닉스 이어 대우건설 불발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M&A 매물로 내놓은 하이닉스반도체에 이어 대우건설도 잇따라 좌절되면서 대형 M&A가 표류하고 있다. 지난주 대우건설 인수 검토 의사를 밝혔던 STX그룹이 22일 '불참' 결정을 내렸다.
STX그룹 관계자는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을 적극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려 했으나 시장의 우려가 컸다"며 "무리한 인수보다는 기존 건설부문 강화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STX의 인수 포기에는 재무적인 역량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9월 기준 ㈜STX는 단기차입금 7256억원과 부채 비율 210%를 기록하고 있다. STX조선해양도 같은 시가 단기차입금 9482억원과 563.7%의 부채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STX의 도전은 무리"라는 시장의 우려가 확산되면서 관련 주가가 급락하는 등 진통을 겪자 신속히 불참 입장을 정리한 것이다.
지난 2008년 말 매각작업을 공식화했으나 아직까지 인수자를 찾지 못한 하이닉스도 비슷한 상황이다. 작년 9월22일 하이닉스 인수의향서 마감시한에 효성그룹이 단독으로 제출하며 매각작업에 탄력을 붙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의 끊임없는 특혜 시비 제기와 해외 부동산 불법 거래 의혹 등 잇따라 터져 나온데다 시장에서 유동성 우려가 끊임없이 터져나오면서 결국 하이닉스 인수 의사를 철회한 바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몸집불리기 욕심과 시너지에 대한 환상으로 몇몇 기업들이 무리한 M&A를 추진한 이후 혹독한 대가를 치루면서 대형 M&A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충분한 자기자본을 확보한 몇몇 대기업집단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에 대해 시장에선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포트폴리오 중심의 중소형 M&A 선호
반면 현대오일뱅크 등 중소형 M&A는 시장에 매물로 나옴과 동시에 관심을 끌면서 주인을 찾아가고 있다.
매각대금 1조340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자금에도 불구하고 최근 성사된 GS리테일의 백화점·마트 사업부문 매각이 대표적인 사례다.
GS리테일의 백화점과 마트사업부문에 롯데그룹을 비롯한 사모펀드,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등 복수의 인수 후보들이 각축전을 벌인 것이다.
결국 롯데그룹이 GS리테일 사업부의 전체 임직원의 고용을 승계하기로 결정하고 매각이 성사됐다. 작년 대형 매물들이 잇따라 시장에서 좌절을 겪는 와중에서 현대종합상사만 유일하게 현대중공업에 매각이 성사됐다.
이 외에도 GS칼텍스는 리사이클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삼일폴리머를 인수했으며, 한화증권도 푸르덴셜증권을 인수했다. 대형 M&A가 줄줄이 좌절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소형M&A는 기업의 관심을 끌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 관계자는 "최근 세계경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글로벌 경기 악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M&A를 추진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롯데그룹의 경우 GS리테일의 백화점과 마트사업부문 인수로 유통사업부문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
김민아 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롯데백화점이 경쟁 백화점보다 다소 중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데, GS백화점이 현재 위치한 지역으로 보면 롯데백화점이 추구하는 전략과 잘 맞다"고 평가했다.
GS칼텍스도 최근 정유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리사이클링 사업에 본격 진출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M&A 전략적 접근 필요
이같은 상황에서 단순 시너지 효과만을 보고 M&A시장에 뛰어들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미 충분한 시장 영향력을 확보한 대형 매물인 경우는 추가적인 시너지 창출이 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공격경영을 선언한 대기업집단들도 M&A 전략을 대형 매물보다는 사업 포트폴리오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식품·유통 등 기존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한 M&A는 항시 검토하지만 앞으로 나올 대형 매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GS그룹도 신사업 진출을 통해 석유 및 화학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계획이지만 무작정 뛰어들기 보다는 과거처럼 신중한 판단을 통해 M&A에 참여할 계획이다.
한화그룹도 다양한 국내외 매물을 검토하겠으나 신중하게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서 있다. 다만 포스코만이 대형 매물인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최우선으로 진행하고 대우조선해양이 매물로 등장할 경우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M&A업계 관계자는 "최근 주요 대기업집단들이 시장의 우려로 인해 M&A에 선듯 나서지 못하고 있다"면서 "대형 매물이 당분간 시장에 나오더라도 쉽게 주인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는 방식의 M&A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