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악화로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한 그리스 정부가 자국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국제통화기금(IMF)에 도움 요청을 망설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그리스 정부가 유럽연합(EU)과 IMF에 자금지원을 요청하게 될 경우 국민들에게 어떻게 이해를 구해야 할지를 놓고 마라톤 회의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게오르게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와 게오르게 파파콘스탄티누 재무장관, 그 외 각료와 여당 지도부는 20일 자리를 갖고 이에 대해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집행위원회(EC)와 유럽중앙은행(ECB), IMF 대표단은 21일부터 2주 동안 아테네에서 진행되는 그리스에 대한 450억유로의 지원방안 논의에 들어갔다.
그리스는 오는 5월19일 만기가 돌아오는 85억유로의 부채를 막기 위해 100억달러를 긴급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부도 가능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인 CDS 프리미엄은 4.95%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나타냈다.
이 때문에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지만 그리스 정부는 선뜻 EU와 IMF에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다는 것은 부도난 나라의 국민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1997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며 IMF에 자금지원양해각서를 체결한 경우와 마찬가지다. 한국인들은 당시를 IMF 경제위기·IMF 외환위기·IMF 환란·IMF 관리체제·IMF 시대 등 다양한 명칭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스 고위 관계자는 “그리스 국민에게 IMF란 비참한 세월이 시작됨을 알리는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는데다 IMF는 제3세계나 남미의 빈국을 돕기 위한 조직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의 역할은 국민에게 이번 금융 지원이 어떤 것인지를 전달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고 토로했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IMF에 의한 지원사실을 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확정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는 해외 금융시장에서 재정적자를 매울 수 있을 정도의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리스 고위 관계자는 “지원 요청 시기는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정하게 되겠지만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5월 채무만기일 전에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
한편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유로존이 그리스에 약속한 300억유로의 구제금융 가운데 39억유로를 올해 안에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라가르드 장관은 “5월에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질 것으로 우려하지는 않지만 미리 준비해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스의 10년만기 국채와 독일 국채의 스프레드(수익률 격차)는 21일 5.17%로 사상 최대폭으로 벌어졌다. 20일은 4.77%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