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아시아를 넘어 미국을 위협하던 일본이 흔들리고 있다. 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이겨내고 회복하는가 싶었지만 일본 경제는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일본의 문제가 일제히 대두되면서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4회에 걸쳐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국가부도 경고음.. 그리스 다음은 '日本'
② 무너지는 하토야마 내각
③ 휘청거리는 '주식회사 일본'
④ 고립되는 일본, 일본인
일본의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하던 평생직장의 개념이 무너진 후 일본인들은 극도의 중압감과 사회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히키코모리’는 은둔형 외톨이라는 뜻으로 사회와 담을 쌓고 지내면서 가족들과도 대화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뜻한다.
지난 17일 밤에는 15년동안 방에만 틀혀박혀 살던 30대 ‘히키코모리’ 남성이 일가족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살인범은 살해당한 가족의 장남으로 “인터넷을 해약했다는 말에 화를 참을 수 없어서 자신의 친가족을 칼로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히키코모리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의 장기적인 경기침체부터다.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불황에 따른 사회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집안에 숨어 살게 된것이다.
히키코모리는 최근 160만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되며 장기불황의 여파로 30대를 넘어 중년층까지 연령층이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히키코모리 같은 은둔형 인간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우울증 환자가 100만명을 넘어선 104만명을 기록했다.
일본정부는 이에 히키코모리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1년부터 일반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건강진단에 우울증을 포함시켰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和’로 대표되는 강력한 집단주의 문화를 지녔다. 개인은 사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기업이나 정부 같은 집단은 개인의 노력에 평생고용 등의 형태로 보상했다.
사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사회보장제가 가장 뒤떨어져 있으나 특유의 집단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평생직장, 평생고용의 개념이 이를 보충했다.
그러나 기업환경은 장기적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성과급, 연봉제 등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졌지만 일본의 사회안전 보장망은 이를 제대로 보충해 주지 못했다.
이에 많은 일본인들이 사회적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사회에 진출하는 것을 꺼려 차라리 혼자만의 세상에 은둔하는 것을 택하게 된 것이다.
히키코모리만이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노령화가 전세계 어느 국가보다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회적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데 있다.
지난 1970년대 일본의 고속성장기에는 일본의 젊은이와 노인의 비율은 8:1이었으나 2004년에는 3:1로 노인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앞으로 40년 뒤에는 거의 1:1이 되어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형편이다.
일본 총무성은 현재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65세 이상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노인 인구의 단순한 증가가 아닌 일본 사회가 성장동력을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메이지유신 때는 서구 사회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하루 빨리 발달된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고 개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2차 세계대전 후에는 패전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의지와 일본인 특유의 꼼꼼한 성격이 조화를 이뤄 제조업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은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비전을 찾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다.
이웃국가인 중국은 지난 2006년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다룬 대국굴기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영제국, 미국의 뒤를 잇는 대국으로 다시 일어나겠다는 야심을 전 세계에 선포하고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가장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며 어느새 G2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로 성장했다.
과거 일본의 식민지였던 한국은 일본을 극복하고 가난을 벗어나자는 염원이 성장동력으로 작용해 일본의 하청업체 취급을 받았던 삼성, LG가 일본의 소니나 도시바 등과 당당히 경쟁하는 수준까지 오르고 국가경제규모도 세계 20위 안에 들 정도로 성장했다.
일본은 21세기를 이끌어 갈만한 비전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은 취임초부터 아시아 관계를 중시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독도가 일본 국토라는 것을 명기한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에 통과시킴으로써 아시아에서 가장 긴밀한 관계를 쌓아가야 할 한국과의 관계가 틀어졌다.
후텐마 기지이전을 둘러싼 말바꾸기는 일본의 최고 동맹인 미국의 분노만 불러 일으켰을 뿐이다.
2차대전의 패전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은 지금까지 공업화와 잘 교육된 근로자들, 기술 중시 사회풍조 등으로 패전의 아픔을 딛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독일이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면서 유럽연합의 중심국가로 떠오른 것에 반해 일본은 패전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과거를 청산하지도 못했다.
여기에 그동안 최고의 동맹이었던 미국의 관심은 어느새 중국으로 옮겨가 버린 초라한 상태가 됐다.
히키코모리가 일본 사람뿐 아니라 일본 자체를 가리킬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는 말도 이래서 나온다.
일본이 현재의 고립되고 활기를 잃은 모습을 어떻게 극복할 지 세계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