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환율전쟁의 서막을 알린 일본의 환율개입이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6년 6개월만의 환율개입과 4년 3개월만의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엔의 기세가 거침이 없다.
뉴욕외환시장에서 11일(현지시간) 엔은 달러에 대해 지난 주말 대비 0.2% 상승한 82.13엔을 나타냈다.
장중 달러당 81.39엔으로 1995년 4월이래 최고치를 기록, 80엔대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양적 완화가 확실시됨에 따라 달러 가치가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달러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 소재 온라인 외환거래업체인 GFT 포렉스의 캐시 린 환율 조사책임자는 “달러가 과도하게 팔리고 있다”면서 우려를 나타냈다.
연준은 지난달 21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12일 발표한다. 연준은 지난달 회의에서 추가 완화 가능성을 내비친 바 있다.
비장의 카드가 실패로 끝나면서 일본의 갈등도 늘고 있다. 또다시 개입에 나서자니 국제 통화 약세 경쟁을 과열시켜 세계 경제 전반에 위협을 초래할 수도 있는 반면 눈치만 보느라 자국의 경기 침체를 속수무책 방관하는 것은 더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간 나오토 정부는 지난달 15일 환율개입을 단행하면서 향후 추가 개입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이 환율 개입 직후부터 강세를 지속해온 엔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개입의 마지노선이었던 달러당 82.88엔까지 넘어섰다.
또 지난 주 발표한 5조엔 규모의 자산매입을 포함한 양적완화 정책 역시 약효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당국은 망연자실이다.
자칫하면 지난 주말 미국 워싱턴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의 약속을 가장 먼저 파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간 총리는 지난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에서는 급격한 환율 변동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엔고가 더 가파라지면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국제사회의 약속보다는 일단 자국부터 살고 보자는 식이다.
그러나 간 총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일본 경기가 전후 최악의 침체에 빠져 경기 회복이 부진을 보이는 가운데 그 원동력인 수출업계에서 비명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책결정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급격한 엔고는 기업에 큰 타격을 준다”며 “지금 같은 수준의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 일본 산업의 경쟁력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해 투자가 막히고 고용 기회가 감소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일각에서는 달러가 바닥을 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6개 주요통화에 대한 달러 지수는 11일 전날보다 0.3% 상승한 77.516를 나타냈다. 이 지수는 지난 3분기(7~9월)에 8.5% 떨어져 분기 기준으로는 8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것을 달러 상승 조짐으로 보고 있다.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헤지펀드 등 대규모 투기세력의 달러 매도 주문은 지난 5일 현재 34만1683매의 순매도였다.
2008년초와 2009년말 달러 매도주문에 이 수준에 가까워졌을 당시에는 달러 값이 상승한바 있다. 다시 말하면 엔고가 꺾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BNP 파리바의 한스-괸터 레데커 글로벌 환율 조사책임자는 “누구나 달러 약세행 배에 타고 있다”면서 “너무 많은 사람이 타면 배는 가라앉기 마련”이라고 말해 달러 약세가 조만간 끝날 것임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