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중의 명품’ 에르메스(Hermes)는 1837년 유럽귀족에게 말안장을 만들던 작은 가게에서 출발했다.
창업주인 티에르 에르메스(Thierry Hermes)가 갈고 닦은 가죽공정에 대한 노하우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오면서 에르메스는 정통 명품으로 손꼽히게 됐다.
뛰어난 장인정신을 인정받아 1855년 파리세계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1880년 티에르의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파리근처로 매장을 옮기면서 북아프리카, 러시아, 아시아와 아메리카까지 시장을 확대했다.
손자들이 에르메스를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회사명을 에르메스 프레레스(Hermes Freres)로 변경했다.
80명의 안장 기술자를 고용해 가죽기술 개발에 힘쓰면서 가죽제품과 의복에 사용되는 지퍼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따냈다.
가죽 기술을 바탕으로 1922년 최초의 가죽 핸드백을 출시했고 1935년 훗날 ‘켈리백(Kelly Bag)’이라 불린 제품생산을 시작했다.
이 핸드백은 모나코의 왕비가 된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Grace Kelly)가 1956년 미국 잡지 ‘라이프(LIFE)’ 표지에 임신한 배를 가리기 위해 들고 나온 모습이 실리면서 ‘켈리백’으로 불리게 됐다.
핸드백 출시 이후 각종 넥타이, 스카프, 향수 등 다양한 의류악세사리 제품을 내놓으면서 세계적인 명품업체로 거듭난다.
1970년대 미국과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다른 기업에 비해 천연소재만 고수하면서 경영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장인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해 혁신을 꾀하면서 1990년대 최고의 명품으로 등극한다.
특히 상위 1%만이 구매할 수 있다는 이른바 ‘버킨백’은 켈리백과 더불어 에르메스가 뽑는 최고의 제품으로 유명하다.
버킨백은 프랑스 샹송 가수 제인 버킨(Jane Birkin)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버킨은 1984년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에르메스 5대 회장인 장루이 뒤마와 옆자리에 앉게 됐다.
늘 들고 다니는 커다란 밀짚 가방을 짐칸에 얹어놓았는데, 가방이 떨어지면서 내용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수납을 넉넉히 할 수 있는 가죽 가방이 없다’는 불평을 듣고 뒤마 회장은 버킨을 위해 특별히 가방을 제작했다.
최근 콧대 높기로 유명한 에르메스가 174년 창립역사상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명품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진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 회장이 에르메스 지분을 확대해 경영권 확보에 나서면서 에르메스 가문을 정조준하고 있다.
매서운 공격에 72명의 상속인들이 에르메스지주사 설립을 추진하며 똘똘 뭉쳤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LVMH는 지난달 에르메스에 대한 지분율을 20.21%로 높이며 추가적인 매입 의사도 밝혔다.
업계에서는 LVMH가 점진적으로 에르메스 경영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현재 LVMH가 에르메스에 대해 갖고 있는 의결권은 12.73%.
LVMH의 맹공격에 에르메스 가문은 지주사 설립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에르메스 지분의 73%를 보유하고 있는 후손들은 각자가 보유한 지분 50%를 모아 지주회사를 설립, 독자적인 지분 매매를 제한하겠다는 계획이다.
프랑스법에 따르면 한 기업의 33%를 보유하고 있는 주주는 나머지 지분의 거래에 관여해야 한다.
이에 에르메스가 심의를 요청했고 이에 프랑스 금융시장청(AMF)이 자문위를 열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 소액주주협회(ADAM)의 콜레트 누빌르 회장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가족 주주들의 의견에 찬성한다며 “선(善)이 승리하는 것이 시장의 법칙”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에르메스 후손들간 내분이 일면서 지주사 설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20명의 에르메스 후손들이 전체의 7%에 달하는 에르메스 지분을 모으지 않기로 결정해 LVMH의 적대적 인수가능성이 높아졌다.
루카 솔카 스탠포드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에르메스의 일부 후손들이 지주사 설립을 반대하면서 LVMH가 지분확대를 통해 에르메스를 인수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해줬다”고 말했다.
168억유로에 달하는 시장가치를 자랑하는 에르메스의 주가는 LVMH가 지분확대를 시사한 지난해 10월 22일 이후 9.5% 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