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늑장 대처를 보고 있노라면 뒷북치고 있는 구제역 방역 대책과 어찌나 똑 같던지…. 전셋값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올라버렸고 더 오를 것 입니다.”
치솟은 전셋값을 감당 못해 얼마 전 서울 신림동에서 경기도 안산으로 거주지를 옮긴 30대 ‘전세난민’ 이병래씨의 말이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사방팔방 퍼지고 나서 수백만 마리의 소·돼지를 땅에 묻어봐야 소용없었듯, 전셋값이 이미 오를대로 오른 현 상황에서 아무리 많은 방안을 쏟아낸다 해도 ‘백약이 무효’라는 것.
지난 10일 당정협의 논의결과 2.11 전월세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장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된 DTI 규제완화 연장여부 관련 어떠한 언급도 없었다는 점에 대해 아쉽다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가뜩이나 매수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DTI 규제완화 연장이 불발되면 매매시장이 더욱 위축되고 전세난은 더 가중될 것이란 예상이 시장에 깊게 자리잡은 까닭이다.
부동산 114 김규정 본부장은“DTI규제가 예정대로 3월에 폐지됨에 따라 가뜩이나 매수심리가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에 악재로 작용해 매매가 답보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전세난은 가속되는 구조가 만들어 질 것이다”고 말했다.
남영우 나사렛대 교수도“전세자금지원은 오른 전세값을 기금으로 메우라는 얘기가 되는데 이걸로는 오른 전셋값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DTI가 빠진 상황에서는 매매 활성화를 통한 전세난 해결이 힘들 것이다”고 설명했다.
일선 시장의 반응도 싸늘하기는 마찬가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B공인 대표는 “연장이든 일몰이든 빨리 결정해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길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부동산시장 및 경제 파악에 자신이 없다보니 계속 질질 끄는 게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대책에 대한 반가움보다는 정부가 좀 더 서두르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높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전셋값이 무섭게 치솟는 와중에도 별다른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듯 뒷짐만 지고 있다가 사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나서야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번 대책 역시 개수만 많을 뿐 알맹이는 빠져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발표된 대책 중 전세자금 금리인하, 지원액 확대, 지원대상의 확대 등 ‘세입자 부담 완화’ 대책으로는 현재 불같이 붙은 전세대란을 안정시키기에 미흡하다는 반응인 것이다.
특히 건설업계는 매입임대사업자 세제지원 확대, 민간 미분양주택 전월세 활용, 5년 건설임대 자금지원 확대 등을 담은 ‘민간 임대주택 공급 활성화’ 등의 방안은 업계가 수차례 건의한 것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아쉬움을 표시하며, 전세난이 악화될대로 악화돼 효과를 기대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시각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중견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건설 지원안을 내놓기만 하면 ‘반서민’, ‘건설정부’ 등 꼬리표를 달아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민간건설에 대한 지원이 조속히 이뤄져야 1~2년 후 찾아올 전세재앙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일부 국민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임대주택 활성화’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는 시각이 많다.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장기적인 대책인 데다, 정작 수요자들이 원하는 주택이 제공될 수 있을지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성남시 분당구 L공인 대표는 “소형 보금자리 임대주택을 조기 건설·공급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나, ‘숫자(호수) 채우기’에 몰두하다 지나치게 작은 면적의 임대주택만 양산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