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행 열차를 떨리는 가슴으로 기다리고 있자니 봄 햇살을 가득 실은 네 칸짜리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시속 300km 속도의 KTX열차와 비교하면 느리고 초라해 보이지만 남도의 들판을 어루만지며 달려 온 네 칸짜리 꼬마기차는 거침없고 당당하다.
열차가 남쪽을 향해 달리다 보성역, 득량역을 지나 조성역으로 향할 때 미끄러지듯 몸을 틀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왼편으로는 작은 마을들이 이어지고 오른편으로는 초록 보리밭이 가득 매운 득량만 간척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간척지에는 동쪽의 고흥반도와 보성을 연결하는 길이 약 5km의 방조제가 시원스레 이어지고 그 안쪽으로 오랜 세월 고마운 식량이 되어 준 곡식이 심겨져 있다. 임진왜란 당시 군수식량을 모아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하여 ‘득량’이라는 이름을 얻은 마을이다.
드넓은 보리밭을 더욱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득량만 방조제 위를 걷는 것이다. 방조제 길을 따라 왼쪽에 수로가 이어지고 갈대가 우거져 운치가 있다. 또, 갈대숲 사이로 산책로가 잘 형성되어 있어 기차 여행자나 해안도로로 드라이브해 오는 방문객에게 또 다른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마을 내 이금재 가옥, 이용욱 가옥, 이식래 가옥, 열화정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데 특히, 마을 뒤편 대숲에 둘러싸인 열화정은 19세기 중엽에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100년 넘는 세월의 흔적이 깃든 강골마을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싸리담장을 끼고 돌길을 따라 굽이진 고샅길을 오르면 수많은 선비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멋스런 누마루와 소박한 연못,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열화정을 만날 수 있다.
강골마을의 좁게 난 돌길, 시원스런 대숲 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여유롭게 전통마을에 찾아온 봄 햇살을 즐겨보자. 저녁에는 한옥에서 하룻밤 묵으며 마을 주민들과 정을 나누며 하룻밤을 묵을 수도 있고, 엿만들기나 다도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니 미리 정보를 알아 가면 더 많은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이번에는 각종 CF와 드라마 촬영지로 잘 알려진 회천리의 녹차 밭, 제2대한다원으로 가보자. 첫 번째 밭의 경사진 모습과 달리 평지에 시원하게 펼쳐진 이 녹차 밭은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촬영 포인트다.
녹차 밭 가까이서 바다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율포 해변이다. 율포 해변은 백사장 길이가 1km 정도로 그 규모는 작지만 드넓은 갯벌과 일출에서 일몰까지 모두 볼 수 있어 한적하고 여유로운 바다 산책지로 제격이다. 게다가 보성군에서 운영하는 율포해수녹차탕에서는 녹차탕과 해수탕을 번갈아 즐기며 바다를 조망 할 수 있으니 녹차 밭을 오래 걸어 지쳤던 몸을 풀어줄 수 있다.
또한 지척에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배경이 되었던 벌교도 있다.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무지개다리 홍교를 비롯해 소설 속 실존인물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소설 <태백산맥>의 친필원고를 비롯해 실제 사용했던 필기도구들까지 꼼꼼하게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현대역사의 굴곡들을 그려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벌교의 뻘밭에서 캐낸 싱싱한 꼬막 맛을 볼 수 있으니 보성에 간다면 한번쯤 방문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