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국제 신용평가사가 대반격에 나섰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하면서 포문을 연 셈이다. 100년 넘게 국제 금융시장을 호령한 신평사들이 위상 찾기에 나서면서 금융시장 역시 바짝 긴장하고 있다. 4회에 걸쳐 글로벌 신평사의 현황을 짚어보고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① 글로벌 신평사의 대반격
② 트리플 A의 딜레마
③ 글로벌 신평사, 화려한 날로 컴백?
④ 中, 글로벌 신평사도 접수한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신화는 국가 신용등급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한 데 대해 시장이 내린 결론이다.
S&P의 미국 국가 신용등급 전망 강등은 과거 ‘대마불사’만 믿고 재정적자 감축 노력을 소홀히 한 경제대국들에 경종을 울렸다는 점에서 소기의 성과는 있었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경제대국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가 가뜩이나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신용평가사들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 가치가 추락하고 미 채권시장에서는 미 국채 가격이 곤두박질칠 수도 있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미국 투자회사인 밀러타박의 댄 그린하우스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트리플A(AAA)를 잃더라도 그것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캐나다처럼 정부가 자금 조달 능력이 있거나 일본처럼 미국 투자자들이 자국 국채에 매력을 느끼면 국채 가치가 주저앉을 일은 없다”고 설명했다.
S&P의 경고에도 시장이 부화뇌동한 가장 큰 이유는 미 정부와 의회가 즉각 행동에 나서 정부 부채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믿음이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MF 글로벌의 닉 칼리바스 금융 연구 부문 부사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간에 이견은 있지만 이전보다 진전된 내용의 재정 적자 감축안을 내놨다”고 말했다.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고자 국채 발행을 축소하면 공급 감소에 따른 가격 인상이 기대되는 데다 미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재정 적자를 감축하게 되면 성장률이 둔화해 안전자산인 국채의 매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촉발된 금융위기에 이어 2009년 두바이 사태,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까지 트리플 펀치를 연달아 맞으면서 시장의 맷집이 세어진 것도 시장이 잠잠한 이유다.
세계를 덮친 세 차례의 위기와 각국의 재정위기는 높은 신용등급을 꿰찼던 나라들을 줄줄이 거꾸러뜨렸다. 대표적인 나라가 세계 2위 경제대국에서 3위로 추락한 일본이다. S&P는 올 1월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S&P는 정부의 정책 일관성 부재와 추진력을 잃은 집권당 그리고 막대한 국가부채가 향후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도 강등된 상황에서 미국이 레드카드를 하나 더 받는다는 것은 더이상 시장의 흥미거리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S&P는 2년 전부터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누차 경고해왔다.
S&P의 미 국가 신용등급 전망 하향이 대수롭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미국이 최고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잃긴 했지만 미 경제 규모는 여전히 세계 최대이고 달러화는 여전히 기축통화라는 점이다.
옥스포드 애널리티커의 에듀아르드 플라스티노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트리플A’ 등급을 잃어도 자금조달 비용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일본은 몇 차례나 등급이 강등됐음에도 투자자들은 다양한 이유에서 여전히 엔화를 사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의 애널리스트들도 “S&P가 일본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했을 때 일본 국채 수익률 추이에서도 나타났다”면서 “순간적인 반응은 있었지만 레인지에서는 거의 영향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 국채는 앞으로도 달러화 기준 채권의 벤치마크로서 최선의 세이프헤이븐(안전자산)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미 국채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자가 있다는 점도 시장에는 위안거리다. 미 국채의 최대 고객은 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와 중국, 일본이다. 연준은 ‘트리플A’ 등급의 국채만 사도록 제한돼 있지 않은데다 나머지 두 국가 중 특히 중국은 자국의 경제력을 과시하기 위해 미 국채를 매집하고 있어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되더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투자자들은 경제대국의 신용등급보다는 회생 능력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