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 자리를 놓고 신흥국과 유럽간 기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스트로스-칸만한 적임자를 찾기가 어려워 후임 인선은 녹록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IMF 이사회는 19일(현지시간) 성범죄 혐의로 미국 뉴욕경찰에 구금된 칸 총재가 사퇴서를 통해 사의를 표명했다며 이른 시일 안에 후임 선출을 위한 절차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신흥국과 유럽, 미국 등에서 차기 IMF 총재 자리에 눈독을 들이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신흥국에서는 트레베 마누엘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재무장관과 아르미니우 프라가 전 브라질 중앙은행장, 중국 중앙은행장을 지낸 주민(朱民) IMF 총재 특별고문, 케말 데르비슈 전 터키 재무장관,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장 등이 물망에 올랐다.
신흥국들은 칸 총재가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직후 1946년 IMF 설립 이래 65년 동안 유럽인이 독식해온 만큼 IMF 쇄신을 위해서라도 신흥국 출신이 총재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도 절대 IMF 총재직을 내줄 수 없다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유럽에서는 독일의 요제프 애커만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와 토마스 미로우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총재, 고든 브라운 전 영국 총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브라운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반대고 있으며, 애커만 CEO는 공직 경험이 부족하고 미로우 총재는 유럽 재정위기를 헤쳐나갈 만한 정치력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이 거론되고 있지만, 국내에서 부패혐의가 불거진 점이 걸림돌이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65년간 10명의 IMF 총재 가운데 4명을 배출했다.
미국은 유럽에서 IMF 총재를 배출하는 대신 세계은행 총재를 맡는 등 금융 권력을 양분해왔다. 하지만 미국도 이번에는 은근히 IMF 총재 자리를 탐내고 있다. 미국인인 존 립스키 IMF 총재대행(부총재)을 내세워 무혈 입성을 노리고 있는 것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17일 뉴욕 하버드 클럽에서 가진 청중과의 대화에서 칸 총재와 관련해 “그는 현재 IMF를 이끌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차기 총재 선임 계획을 세우야 한다”고 말했다. 칸 총재의 거취에 대해 미국 정부가 처음 내놓은 입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재 미국은 IMF 의결권 17%를 갖고 있으나 유럽 국가들의 총 의결권 36%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의결권 21%를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자신들의 총재 후보를 관철시키지 못할 경우 미국과 유럽이 내세운 후보를 선택할 수 있는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
문제는 신흥국과 유럽, 미국이 내세운 이들 후보가 과연 IMF 총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트로스-칸만큼 적임자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FT는 차기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출마 예정이었던 스트로스-칸 총재는 대담한 의사결정자이자 힘있는 정치가, 유능한 이코노미스트로서 IMF 총재직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칸 총재는 IMF 총재직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로존 금융위기를 완만하게 해결했다고 평을 얻고 있다.
FT는 그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유로존의 재정위기 관리 능력에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번 스캔들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스트로스-칸 총재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로부터 신뢰받는 극소수의 유럽 정책당국자 중 한 명이었던만큼 독일과 연대해 역내 단합에도 지대한 공을 세웠을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남유럽 국가의 연쇄 재정위기로 유럽 전역이 혼란에 휩싸인 상황에서 IMF 총재의 부재는 유럽에 있어서도 치명타라고 FT는 지적했다.
후임이 정해지기 전까지 존 립스키 수석 부총재가 IMF 총재직을 대행할 계획이다. 립스키 총재는 이날 이사회도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