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회장의 별명은 ‘장수 고시생’이다. 경영수업 기간이 유독 길었기 때문이다. 그는 1978년 동국제강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오너 집안의 장남이었기에 초고속 승진도 가능했다. 그러나 그는 기획실장, 영업본부장, 인천제강소장, 동국제강 사장 등을 두루 거치며 탄탄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그가 회장 재임 10년 동안 큰 위기 없이 동국제강을 이끌어 온 비결은 이같은 경영수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장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3가지의 큰 성과를 거뒀다. 아버지 고 장상태 회장의 평생 꿈이었던 고로 제철소를 브라질에 짓게 됐고, 충남 당진에 후판공장을 새로 지었다. 을지로에 28층짜리 최첨단 새 사옥 ‘페럼타워’도 세웠다. 철강업계 CEO로서는 이룰 만한 성과는 다 이룬 셈이다.
3대 거사를 이룬 데는 장 회장의 모험 정신이 한 몫을 했다. ‘디테일’과 ‘타이밍’을 경영의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있는 그는 회사의 가치 증대를 위해서라면 모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감하게 투자에 나선 결과다.
당진 후판공장 건설 과정에도 그의 모험 정신은 잘 드러난다. 장 회장은 후판 사업의 고도화를 통해 고부가가치 실현을 꿈꿨다. 이를 위해 연산 150만톤 규모의 당진 후판공장 건설을 추진했다. 지난 2007년부터 총 9264억원, 54만명의 공사인원이 투입됐다. 동국제강이 만든 단일 공장 중 최대 규모의 투자다.
모든 임직원이 후판공장 건설을 반대했지만 장 회장은 그대로 밀어붙였다. 후판공장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올해 2분기 동국제강의 경영 실적이 향상된 데에는 후판공장에서 생산한 고급 후판 제품이 한 몫을 했다.
브라질 고로 제철소 건설 과정은 더 극적이다. 장 회장은 2005년 브라질 세아라 주에 전기로 제철소 건설 사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기로 제철소 건설 사업은 2007년 에너지 가격 폭등으로 난관에 부딪혔다.
그러자 장 회장은 해결사를 자처하며 세계 최대 철광석 공급사인 브라질의 발레와 주 정부, 연방 정부에 변함없는 제철소 건설 사업 의지를 각인시키고 사업 지속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해 몸소 현장을 누볐다.
10년간 공들여 온 제철소 건설에 대한 장 회장의 열정과 진정성은 마침내 브라질을 움직였다. 그의 노력은 지난달 브라질 뻬셍 산업단지 다목적 부두 준공식에서 빛을 발했다. 2015년 제철소가 완공되면 국내 톱 클래스 철강업체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장 회장은 “철강은 내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철강업을 위해서라면 브라질도 단숨에 갈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다.
장 회장에게 앞으로 놓인 과제는 지난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동국제강을 어디까지 더 키우느냐에 있다. 일단 다른 분야로 한눈을 팔기보다는 철강업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장 회장은 철강산업을 통해 국가 경제에 기여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동국제강의 미래는 다른 신수종 분야 개발보다 철강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