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은행연합회장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덕목은 ‘조율’과 동시에 중심을 잃지 않는 ‘강단’이다.
이러한 자리에 박병원 전 재경부(기획재정부) 차관이 돌아왔다. 지난달 30일 박 전 차관이 제11대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요직 두루 거친 정통 관료= 박 회장은 은행연합회장의 필수 덕목과 조건인 ‘조율’, ‘강단’을 갖춘 인물로, 은행연합회 소속 은행들은 대내외 경제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은행 입장을 대변할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박 회장이 이렇게 평가받는 이유는 금융계와 관(官)계를 아우르는 그의 돈독한 경험 때문이다.
행정고시 제17회, 경제기획원(EPB)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박 회장은 수석 국장인 경제정책국장을 최장기간인 2년5개월 동안 역임하고 재경부 차관까지 거친 정통 관료 출신이다.
또 2007년 3월부터 2008년 6월까지는 야전사령관으로써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맡아 현업에서 1년 넘게 직접 진두지휘를 했으며 2009년 1월까지 청와대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 쌓은 폭넓은 인맥이 은행권 관계자들이 은근히 박 회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다. 그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수장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권 인사들과 막역한 사이다.
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시절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산은금융지주 회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현 국민연금 이사장),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 등과 함께 1기 경제팀으로 정부 경제정책을 이끌었다.
경제수석비서관 이후로는 개발도상국 등 해외를 돌아다니며 국내 은행의 발전상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인 박 회장은 경제학 이외에 산업공학 석사와 법학 석사 학위도 땄다. 덕분에 관료 시절 관련 업무를 대부분 직접 이해하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재경부 재직 시절에는 ‘재경부의 전략가’로 불렸으며 경제정책, 예산 등 거시경제와 정책 조율을 주로 담당했다.
정계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교 시절 5개 국어에 능통했던 천재의 관운으로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수준이다.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성격이지만 물러서지 않는 뚜렷한 신념으로 ‘좌고우면’하지 않을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 것도 비슷하다.
재경부 차관 시절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수요 억제보다 공급 확대를 부동산 안정화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하면서 시장주의자의 면모를 보였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엔 우리금융 민영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도 했다.
또 최근 취임식에서 “은행산업이 포화상태에 가까운 국내 시장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더이상 빠른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점도 시장을 가장 중시한 그의 원칙이 잘 드러나는 면모다.
대외적으로는 유럽발 경제위기, 내적으로는 우리나라 가계 부실,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금융소비자보호 강화, 은행경쟁력 강화 등 여러모로 현안이 산적한 이 시기에 박 회장이 정부와 금융권의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금융권 안팎에서 기대 어린 시선으로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