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지난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와 같은 장례 절차를 따르고 있다. 김일성 주석은 사망 후 12일 만인 같은 달 19일 영결식을 거행한 후 평양시 내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됐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국내 역대 왕들과 대통령의 장례식에 관심이 쏠린다.
조선시대 때 왕이 승하하면 국장도감, 빈전도감, 산릉도감의 세 기관을 임시로 만들어 국상에 대비했다. 국장도감을 장례에 필요한 물건을 준비했고 빈전도감은 장례기간 동안 제사와 의례를 담담했다. 산릉도감은 왕릉을 축조했다.
조선시대 임금의 장례기간은 3~5개월이 소요됐다. 소렴과 대렴에 사용되는 의복과 이불이 소렴 때는 19겹, 대렴 때는 90겹이 사용됐다. 영조대왕의 사례를 보면 장례식 때 90벌의 옷이 소모됐다.
시체의 부패를 막기 위해 평상을 마련하고 그 밑에 빙반이라는 석빙고에서 떠온 얼음을 채워 넣었다. 이것만으로 시체의 악취를 막기가 힘들어 엄청난 양의 옷과 이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의 장례식도 한 달을 넘겼다. 1919년 1월 21일 서거한 후 같은 해 3월 3일 장례행렬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례기간이 길었던 이유는 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 가운데 고 박정희 대통령이 건국 이후 첫 국장(9일)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지난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으로부터 궁정동 안가에서 시해당한 이후 같은 해 11월 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지난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로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고 최규하 대통령은 2006년 10월 22일 서거한 후 5일간의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최 전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26일에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어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사망한 후 7일간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당시 정치권이 국장과 국민장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보인 바 있다. 같은 해 8월 18일 서거한 고 김대중 대통령은 국장으로 결정됐으나 6일장으로 거행했다.
한편 고 이승만·윤보선 대통령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