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데는 해외 라이선스 공연의 흥행 가도속에 국내 창작뮤지컬로서 대작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해외 라이선스 공연 중 에비타가 에비타의 생애를 그려내며 인물 재조명이 문화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면 영웅은 그러한 면에서 성공적이다. 역사 속에서 기록으로 존재하는 인물 안중근을 21세기에 살려내 민족애를 일깨우는데 일조하는 의미있는 창작 뮤지컬로 평가받고 있다.
극은 청년 안중근이 주권을 찾기 위해 인간적 두려움을 극복하고 고군분투해나가는 과정을 그리며 영웅에 대한 존경심 너머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은 비극의 시대에 시대적 소명을 띈 청년과 마주하며 애정과 동시에 그에 비례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는 형사상 죄인이 아니다. 나는 전쟁 포로다.”
극에서 안중근이 일본 법정에서 당당히 외치는 주장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죽음을 앞에 둔 안중근의 가슴 아픈 대사는 시대와 상황, 처한 운명을 거슬러 운명의 결정권자로서 주체의식을 가질 때 비로소 민족과 국가를 지켜나갈 수 있다는 뼈아픈 깨달음을 암시한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미우라는 무죄. 이토를 처단한 나는 사형”
안중근의 고뇌는 민족 전체의 고뇌와 맞닿아 있었고 그의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 그리고 상실은 민족의 상실감과 닿아 있었다.
극은 플롯 자체가 무겁다 보니 자칫 비장해지기만 할 수 있는 극 분위기를 화려한 군무로 활기를 불어넣는다. 일본순사와 독립군들의 쫓고 쫓기는 대치상황을 역동적 군무로 승화시킨 것이다. 추격신에 사용되는 철물구조물은 무대의 넓이를 최대한 활용해 생동성을 담았다는 평이다.
영상 속 배경이 무대위로 실현되는 장면들은 극의 웅장함을 더했다. 특히 실물크기의 기차가 무대에 등장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기차 내 이토히로부미와 설희의 대화는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또한 극은 안중근을 중심으로 주변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는 일도 놓치지 않았다. 안중근을 중심으로 민족독립을 열망하는 이들의 얼굴들, 그들 한명 한명의 개성을 살려내 극의 다채로움을 더했다. 초연 때부터 안중근 역으로 두 차례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정성화의 연기력, 그리고 노래의 웅장성은 객석을 제대로 압도해나간다.
명성황후의 마지막 궁녀 설희 역을 소화하는 이상은의 묵직한 연기는 극게 무게감을 실렸다. 작가는 이토히로부미(조승룡, 이희정)와 설희의 극적 대화를 연출함으로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에 대한 흥미를 일게 한다. 이토히로부미의 잔인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극은 인간 이토의 내면적 갈등을 보여준다.
이런 숙명으로서의 한계,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슬픔도 동시에 드러냈다. 하지만 이 지점은 이토히로부미를 향한 국내정서와 대치되기도 해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일본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이토를 객관적 시선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인 듯 하지만 국내 관객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한편 뮤지컬 영웅은 오는 2월 5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