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사이에서 ‘엔고 시대’가 끝났다는 진단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은행(BOJ)이 지난 14일(현지시간)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추가 금융완화를 결정하면서 엔에 대해 ‘매도 적기’라는 판단이 잇따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5일 보도했다.
일본은행은 장기적인 디플레이션에 제동을 걸기 위해 자산매입 기금 규모를 55조엔에서 10조엔 확대하는 식으로 추가 완화를 결정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유동성 공급이 확대하면 시중에 자금이 증가해 엔화 약세 압력이 커진다.
일본은행의 발표 이후 달러는 엔에 대해 한때 78.03엔을 기록하며 10개월 만에 200일 이동평균선을 넘어섰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일본은행의 결정이 화끈하고 중요한 움직임을 이끌어냈다”고 언급하고 “달러·엔 환율은 올해 안에 100엔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오닐 회장의 전망에 외환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대형은행 수석 딜러는 “런던에서 너무 적극적으로 엔을 팔아 놀랐다”면서 “이는 매우 보기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WSJ는 동일본 대지진과 태국 홍수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수출이 대폭 침체한 영향으로 일본의 지난해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적자로 침체하면서 외환시장이 유난히 민감해졌다고 지적했다.
바클레이스은행의 야마모토 마사후미 수석 외환투자전략가는 “대외 수지 악화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관측이 엔 매도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WSJ는 미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한 것도 엔화 약세를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2월4일까지 1주일간 미국의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전주보다 1만5000건 감소했다. 이는 3000건 감소할 것이라던 시장의 예상보다 크게 개선된 것이다.
또 주요 경제지표 중 하나인 비농업 부문 고용자 수도 지난 달에는 24만3000명 증가하며 시장을 놀라게 했다.
전문가들은 12만5000명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엔고 기세가 약해지면서 일본 당국의 환율 개입 가능성도 후퇴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의 후카야 고지 외환조사부 부장은 “일본 정부가 더 이상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유로존의 재정 위기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은 엔화 약세 흐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트레이더들은 유로존 지도자들이 재정위기 봉합에 고전하는 점에 주목, 유로에 대한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WSJ는 그리스 사태가 악화할 경우 유로·엔 환율은 100~103.40엔으로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앞서 지난달 16일 유로존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유로·엔 환율은 11년래 최저치인 97.04엔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