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서는 고소득자와 자산가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야 주장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근로자와 자영업자는 10명 중 4명꼴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등 공평과세를 위해서는 고소득자 세율을 높이기에 앞서 과세기반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세청 통계연보와 조세연구원 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0년 근로소득자 1516만명 가운데 과세자는 924만명으로 60.9%였다. 592만명은 과세 기준에 미달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사업소득자 523만명 중 과세미달자 247만명을 더하면 전년 근로자와 자영업자 2039만명의 41.1%인 839만명이 세금을 내지 않았다. 2009년 812만명보다 27만명이나 늘어났다. 한국에서는 면세점(세금을 면제하는 기준이 되는 한도)이 따로 없어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야 하지만 복잡한 비과세·감면으로 과세표준액이 ‘0원’인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현상을 줄이려면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세청은 “한국의 실질적인 면세점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은 편”이라며 “복지 제도가 발달한 유럽에서도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최소한의 세금을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드 소득공제와 같은 비과세·감면 혜택을 한꺼번에 많이 줄이면 소득을 한 푼도 숨길 수 없는 월급쟁이들의 세 부담만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긴다. 과세 기반을 넓히려면 먼저 소득이 제대로 파악돼야 한다.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에 앞서 자영업자 소득 파악율을 높여 세수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고소득 자영업자들 중 일부는 아직도 상당한 소득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 민간소비지출액 615조원 중 카드와 현금영수증 사용액 478조원을 제외한 137조원 중 상당액이 세원에서 제외된 것으로 추정됐다. 국세청이 2005년 이후 10차례에 걸쳐 고소득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균 소득탈루율은 48%에 달했다. 실제 번 소득의 절반도 신고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납세자연맹은 “감세 혜택이 거의 없는 서민 근로자의 소득공제 혜택 축소는 가처분 소득 감소로 직결될 수 있다”며 “물가가 오르고 임금인상 폭이 줄어든 상황에서 다수 국민이 손해를 볼 수 있는 비과세·감면 혜택 축소는 신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밖에도 공평과세를 하기 위해서는 탈세의 근원지인 지하경제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지하경제의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0∼30%로 추정된다. 그렇게 되면 지난해 지하경제는 최대 330조원에 달한다. 소득이 노출되지 않는 지하경제에 숨어 세금을 내지 않는 탈루자를 철저히 가려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한 관계자는 “이미 3~4%의 고소득자들이 전체 종합소득세의 70%가량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또 세율을 올린다면 조세 저항이 상당할 것”이라며 “세수 확보 차원이라면 탈루 소득을 찾으려는 노력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