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이같은 관행은 벗어나지 못했다. 당초 금융권 사외이사의 3분의 2 가량이 임기를 마치면서 대다수 교체가 예상됐지만 나타난 결과는 결국 ‘그들만의 리그’였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기고, 서울대 나왔다”= 금융권 사외이사가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일까. 이는 사외이사의 출신지역과 출신고교 및 대학을 보면 알 수 있다.
우선 은행 등 금융지주의 사외이사 113명중 47%인 53명이 서울대 출신이다. 고려대도 18%에 달한다. 이들중 17%는 경기고를 졸업했다. 출생지로 보면 경상도가 32%로 가장 많다. 즉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 주로 은행권의 사외이사에 선임됐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해외유학은 옵션이다.
경영진과 학연(學緣)·지연(地緣)의 인맥관계가 형성돼 있는 만큼 경영진과 엇비슷한 사고를 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물론 다 그렇다고 간주할 수만은 없지만 경영진 입장에서 보면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사외이사진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찬성을 이끌어 내는 확실한 방아쇠인 셈이다.
또 사외이사에게 지급되는 ‘짭짤한 보수’가 학연·지연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엮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4대 지주 사외이사의 평균 보수는 5600만원에 달한다. 사외이사 보수는 경영진이 내 친구, 내 동창, 내 고향사람을 밀어주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5600만원이면 웬만한 대기업 과장급 연봉에 해당된다. 사외이사 입장에서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특히 KB금융지주는 교수 출신 사외이사가 많은 가운데 권력기관을 거친 인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이경재 사외이사(이사회의장)은 한국은행 이사와 감사를 거쳐 금융결제원 원장을 역임했다. 배재욱 사외이사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과장검사 출신으로 대통령 민정수석실 시정비서관을 지냈다. 또 새로 선임된 황건호 사외이사는 금융투자협회 회장을 직전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들 모두 서울대를 나왔으며, 이경재 사외이사와 배재욱 사외이사는 경상도 출신이다.
또 조재목 사외이사는 이명박 대통령(MB) 대선 외곽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이며, 영남고와 계명대를 나온 경상도 출신이다.
하나금융지주의 새로운 사외이사들도 권력기관 출신이 많다. 이상빈 사외이사는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 출신이며, 박봉수 사외이사 역시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을 역임했을 뿐만 아니라 재정경제원 관세국장과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을 지냈다. 황덕남 사외이사도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현재 서울법원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신한지주의 경우 사외이사 후보 중 이상경씨는 현재 법무법인 원전 대표변호사이지만 이전에 헌법재판소 재판관 출신이다. 농협금융지주는 사외이사에 이장영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선임해 퇴직자도 낙하산 인사를 자제하겠다는 금감원의 방침과 배치되는 모습을 보였다.
◇시중銀, 親 금융지주 성향 강해= 주요 시중은행 사외이사들 역시 ‘경상도-경기고-서울대’로 이어지는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은행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은행과 KB국민은행은 경상도 출신의 사외이사들이 많은 반면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은 전라도와 서울지역 출신 사외이사가 더 많다. 신한은행은 박세진 사외이사만 경상도일 뿐 대다수 사외이사가 서울, 인천, 제주 출신이다.
올해 대다수 사외이사가 바뀐 외환은행은 경상도와 충청도 지역 출신의 친(親)하나금융지주 성향의 인사가 다수 포진했다. 좋은기업지배구조 연구소에 따르면 외환은행 사외이사 후보 7명 중 3명이 대주주인 하나금융의 계열사 등에 재직한 경험이 있거나 윤용로 현 외환은행장과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기 때문이다.
천진석 사외이사는 하나대투증권 사장과 충청하나은행 대표(부행장) 출신이며 김주성 사외이사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0여년간 하나은행과 하나금융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특히 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 출신인 김주성 사외이사는 경북 봉화 출신으로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김 전 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의 인연으로 인해 줄곧 ‘정권의 사람’으로 분류됐다.
방영민 사외이사는 재정경제부 경제정책심의관, 금융정보분석원장, 금융감독원 상근감사위원 등을 역임, 관료출신인 윤용로 행장과 상당기간 같이 근무했던 전력이 있다.
정부의 입김이 강한 우리은행은 다른 은행과 달리 관료 출신의 권력형 사외이사들이 눈에 띈다. 이귀남 사외이사는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이용근 사외이사는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역임했다. 또한 김정식·유관희·채희율 등 사외이사들도 현 정부의 경제·금융관련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시연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아는 사람보다 주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사외이사 스스로 가지면서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