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성을 말하다= 지난 2002년 개봉한 영화 ‘죽어도 좋아’는 파격이었다. 영화는 실제 커플인 박치규 할아버지와 이순예 할머니의 성을 가감없이 화면에 담아냈다. 두 사람은 커다란 고무 대야 안에서 함께 목욕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또 사랑은 나누는 순간에는 ‘아유, 죽겠네’‘아이, 좋아’ 라는 감탄사를 연발한다. 70대 노인들의 성행위 장면을 파격적으로 담아낸 영화는 무성 혹은 중성으로 인식되던 노인의 성(性)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했다.
‘죽어도 좋아’ 이후 성(聖)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성(性)스러운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담론이 시작됐다. 또 최근에는 노인의 로맨스를 주제로 한 영화 한편이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2월 개봉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평균 연령이 69세인 주연배우(이순재·윤소정·송재호·김수미)가 출연해 164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영화관을 메운 이들은 대부분 인생의 황혼길에서 로맨스를 마주하고픈 건강한 노인들이었다. 영화는 고집 세고 성질 사나운 우유 배달 할아버지 만석(이순재)이 아내와 사별한 뒤 파지를 팔며 살아가는 송씨(윤소정)에게서 애틋한 감정을 느끼는 모습 등 노년의 로맨스를 그렸다.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김찬호 교수는 “죽어도 좋아를 계기로 노인들의 에로스가 조금씩 자유롭게 논의됐고,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통해 황혼의 로맨스가 완숙미 있게 제시됐다”면서“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삶의 의욕이 왕성한 노인들이 많아지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문화 현상”이라고 말했다.
△소외감·고립감 해결 역할=노인 인구가 늘면서 그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은 여전히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 신원정 팀장은 “노년의 성과 사랑을 다룬 연극이나 영화가 인기를 얻고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자체는 긍정적인 변화”라며“하지만 노인의 성을 ‘박카스 아줌마’처럼 여전히 가십거리로만, 자극적인 소재로만 접근하려는 시각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언론과 젊은 세대에 비친 노인의 성은 여전히 주책없고 약(비아그라)을 남용하며, 일명 ‘박카스 아줌마’를 통한 성매매를 즐기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그러나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노인 4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성매매 경험이 없는 노인은 80.1%(240명), 성매매 경험이 있는 노인은 19.9%(62명)를 차지해 대다수의 노인이 성매매의 경험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 팀장은 “노인을 중성화 시켜 노인기의 성을 퇴폐적인 것, 주책없는 것으로 보는 연령차별적인 시각이 있다”면서 “노년기의 성생활은 단순히 육체적인 성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기에 상실되어지는 사회적 관계를 대신해 소외감과 고립감을 해결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