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술유출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묘안은 딱히 없다. 재계 관계자는 “10명이 한 명의 도둑 못 잡는다”며 “작정을 하고 핵심기술을 빼돌리겠다고 하면 사실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효성그룹과 LS그룹 간의 기술유출 논란이 뜨겁다. 자사 기술을 LS산전에 유출했다며 효성이 중공업 부문 전 임원인 A씨를 고소하자 LS산전은 “효성을 퇴사한 A씨를 계약직 기술 고문으로 영입한 것은 사실이이지만 이외의 의혹들은 사실 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OLED 관련 기술 유출 의혹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전 수석연구원이 LG로 이직하면서 삼성의 AMOLED(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 TV 기술을 빼돌렸다는 것이다.
산업계의 기술유출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기술유출은 기술개발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최첨단 신기술 분야에서의 기술유출은 시한폭탄과 같다. 언제 어디서 기술이 유출될 지 알 수가 없다.
기업들은 신기술 개발과 전문 인력 양성에 오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성공가능성은 낮다. 때문에 경쟁사가 개발에 성공한 기술을 빼오고 전문인력 스카웃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재계에 따르면 기술유출은 이직, 매수, 내부불만 등이 가장 흔한 요인이 된다. 때로는 개별적으로, 때로는 3가지 요인이 하나로 결합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효성과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의 경우 이직으로 인한 기술유출 논란이다. A씨의 경우 효성에서 퇴사 하기 이전부터 출근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내부불만이 가장 큰 요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기업들 간에는 인력이동이 가장 흔하고 민감한 기술유출 요인으로 급부상했다.
지난 5월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반도체 전문회사 현대오트론이 경력직을 채용하자 반도체 선발업체인 삼성과 LG 등이 견제성 공문을 보내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도 관련 기술의 유출 때문이다. 현대오트론 경력직 채용에는 3000여명이 응시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와 LG전자 출신이 1000여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기술인력들의 자발적 이직에는 기업들이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오랜 기간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더라도 이들이 개인적인 이유로 퇴사하겠다면 막을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경쟁사 입사는 그 이후의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유학 간다고 퇴사했던 직원이 어느 날 경쟁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며 “경쟁사에서 일하고 있는 퇴사자의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기술유출 여부는 물론 어떤 기술이 어느 정도 수준에서 유출되었는 지도 알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법무법인 김&장 관계자는 “소극적이지만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첫 번째 조치는 보안조치”라고 강조한다. 핵심기술이라 하더라도 기밀자료로 보안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기술유출혐의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글로벌 정유회사 쉘 등에 이형관을 수출하던 국내 기업의 핵심기술이 중국으로 유출됐지만 보안조치를 취하지 않아 이직한 임직원의 기술유출혐의는 무죄 선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