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 조선업체에서 기술팀장으로 재직하던 엄 모씨는 퇴사하면서 35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지닌 고급 대형 선박 설계 도면과 선박 건조에 필수적인 공정도 등 최신 기술을 빼냈다. 그는 이후 중국 회사와 손을 잡은 국내 설계 전문업체에 입사한 뒤 이 기술을 중국 조선업계에 팔아 넘기려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에 덜미를 잡혔다.
고려아연 계열사에서 인사에 불만을 품고 자진 퇴사한 김 모씨는 몰래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에 침입해 컴퓨터에 있던 첨단 핵심기술인 ‘TSL공법’과 관련한 파일 279개를 웹하드에 올리고, 자신의 USB 등에 저장했다. 이후 해외 경쟁사인 호주 B사에 고액 연봉을 조건으로 이 공법이 담긴 자료를 넘기려다 적발됐다.
어제까지 함께 일하던 동료가 오늘은 회사의 오랜 연구개발 결실을 송두리째 허물어 뜨릴 수 있는 산업스파이로 돌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부자에 의한 기술유출이 많은 것은 최근 기업들이 산업보안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핵심기술 보안대책을 강화해 상대적으로 외부인의 접근이 어렵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11일 국가정보원 산하 산업기밀보호센터에 따르면 2005~2011년 기술유출의 주체는 전직 직원에 의한 사례가 62%(127건)이며, 현직 직원에 의한 사례가 17%(34건)에 달했다. 이어 협력업체 13%(26건), 유치 과학자 2%(5건), 투자업체 1%(1건) 등의 순이었다.
산업스파이의 기술유출 동기는 개인의 영리를 위해 기술을 유출한 사례가 61%(125건), 금전 유혹이 20%(41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인사불만 8%(16건), 처우불만 6%(13건)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적발된 산업스파이에 의한 첨단기술 유출 적발건수는 46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05년 이후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의 산업스파이 적발 건수다.
국내 산업스파이 적발건수는 지난 2005년 29건에 불과했으나 2006년 31건, 2007년 32건, 2008년 42건, 2009년 43건, 2010년 41건 등 매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년간 국내 발생 기술유출 사건을 분야별로 살펴보면 전기전자가 전체의 37%(75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밀기계 27%(55건), 정보통신 15%(32건), 정밀화학 9%(18건), 생명공학 3%(6건) 등의 순이었다.
기술유출 유형의 경우 무단 기술 보관을 통한 기술유출이 전체의 42%(86건)로 가장 많았다. 이어 내부 공모 25%(51건), 매수 23%(47건), 공동연구 2%(4건), 위장합작 1%(2건) 등으로 집계됐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 관계자는 “산업스파이사건은 기술개발 참여자가 죄의식 없이 자행하고 있으며 피해가 기업에 그치지 않고 국가경제에까지 손실을 준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