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주부들은 미국 교외에 사는 네 명의 중산층 가정 주부들의 지루한 일상과 탈출을 서스펜스와 미스터리, 코미디, 에로티시즘 등을 버무려 흥미진진하게 그린 코미디 드라마다.
위험 수위를 넘는 파격적인 장면과 전개로 ‘막장 드라마’의 진수라는 논란도 만만치 않았으나 ABC를 통해 방영되는 내내 시청률 상위권을 지켰다.
시청자 수 2370만명으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최종 8시즌까지 평균 1040만명의 애청자를 유지하면서 미드 역사에 획을 그었다.
이는 여성의 힘이었다.
최근 세계 출판업계에서도 여성들의 파워가 또 한번 주목받고 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라는 영국 작가 E. L. 제임스의 소설이 출판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총 3부작으로 된 이 소설은 21세의 여대생 아나스타시아 스틸과 젊은 사업가 크리스티안 그레이의 엽기 성행위를 주로 그린 이른바 ‘여성을 위한 포르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작년 5월 출간 이후 불과 1년새 영어권 국가에서만 3100만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출간 이래 2000만부가 팔렸다.
영화로도 유명한 스티그 라르손 원작의 밀레니엄 3부작이 미국에서 2000만부 팔리는데 3년이 걸린 것에 비하면 폭발적인 인기가 아닐 수 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비평가 조 윌리엄스는 “있을 수 없는 대화와 비현실적인 등장인물 설정, 유치한 혼잣말 연발 등 작가로서의 실력은 미숙하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강력한 흡인력으로 여성 독자들의 오감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그동안 출판업계가 시대의 변화에 얼마나 둔감했는지를 보여준다.
서점의 여성 코너에 가면 요리, 육아, 뜨개질 같은 서적만 즐비한 것이 그 반증이다.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들의 역할이 달라진지 오래다.
현실적으로 여성들은 출판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자극적인 읽을 거리를 찾고 있었지만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위기의 주부들과 50가지 그림자는 그 동안 억눌렀던 여성들의 다양한 욕망을 분출시킬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에는 전자책이라는 미디어 붐도 일조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변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표지의 책을 보란 듯이 읽을 용기가 있는 여성은 드물다. 심지어 그런 책을 살 용기를 내는 것도 쉽지 않다.
하지만 전자책은 다르다.
남몰래 다운로드할 수도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읽을 수 있다.
50가지 그림자를 쓴 제임스와 출판사 빈티지북스의 성공은 여성들의 욕망과 시대 조류를 정확하게 짚었다는 데 기인한다.
전자책의 홍수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출판업계.
발만 동동 구르지 말고 독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