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하 연준) 의장이 제3차 양적완화(QE)를 비롯한 추가 부양책에 성큼 다가섰다.
버냉키 의장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주최로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올해 연례 심포지엄에서 ‘금융위기 후 금융정책’에 대한 강연을 통해 “경기 자극과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필요에 따라 추가 완화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수단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지만 고용보고서 등의 경제지표 향배에 따라 추가 완화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고용 상황을 감안했을 때 QE3는 시간 문제인 셈이다.
이는 버냉키 의장이 실업률 개선 문제를 ‘중대 사안(grave concern)’으로 규정한 데서도 잘 나타났다. 버냉키 의장은 “고용시장의 개선은 참혹할 정도로 더디다”며 “장기간 미 경제에 구조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라고 거듭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연준은 성장을 위해 필요한만큼 조절을 확대할 것”이라며 “고용시장에서 스태그네이션(장기 경기침체)은 심각한 우려”라는 인식을 표했다.
버냉키 의장의 이날 연설은 9월12~13일로 예정된 차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2주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시장은 버냉키가 잭슨홀 강연에서 QE3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줄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는 지난 2010년에도 이곳에서 양적완화에 대한 힌트를 줬었다.
이후 연준은 두 차례의 양적완화 정책을 통해 2조3000억달러 규모의 자산을 매입해 경기를 자극하고자 했다. 그러나 3년 넘게 실업률을 8%대 이하로 낮추지 못하고 있다. 7월 미국 고용지표에서는 고용자 수가 대폭 개선된 모습을 보였지만 실업률은 8%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는 7일 발표 예정인 8월 고용보고서에서는 비농업 부문의 고용자 수가 11만~12만명 정도로 증가할 것이라고 시장은 예상했다. 그러나 노동 참여율이 회복돼 실업률은 지난번보다 악화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로이터통신은 연준이 지난 6월 미국 경제성장 전망을 대폭 하향, 9월 FOMC 회의에서도 전망이 하향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2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 1.5%로, 현재 8.3%인 실업률을 낮추기엔 역부족으로 판단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날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지난 8월1일 FOMC 성명을 답습한 것이지만 종전보다 QE3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힌트를 준 것으로 평가했다.
CRT캐피털그룹의 데이비드 에이더 국채 전략 책임자는 “버냉키 의장은 이날 발언을 통해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온건파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며 “연준이 지금까지 실시한 것, 지금부터 실시할 수 있는 것을 상당히 강한 어조로 정당화해 QE3를 향한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LPL파이낸셜의 존 카날리 투자전략가는 “버냉키는 QE3 기대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 것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깨지 않았다”며 “실시 시기는 불확실하지만 경기에 비관적인 인식을 나타낸만큼 양적완화 실시는 시간문제”라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버냉키 의장의 발언에 대한 회의론도 제기됐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지속하는 가운데 추가 완화 조치에 대해 검토하는 것은 시기상조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정책 담당자는 항상 시기를 확인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금융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려면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책 스탠스는 필연적으로 향후 경제 동향 전망을 근거로 결정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RBC캐피털마켓의 톰 포체리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발언은 지난번 FOMC 의사록을 재탕한 것에 불과하다”며 “고용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QE3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이이치생명경제연구소의 가쓰라하타 세이지 이코노미스트는 “미 경제지표는 강약이 교차하고 있고 증시도 안정돼 있다”며 “현 시점에서 경기의 방향성을 판단하기가 어려워 연준은 QE3를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다음주 유럽중앙은행(ECB)의 정례 통화정책회의나 고용보고서 내용에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