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결 상대가 불분명하다보니 뚜렷한 공약도 없고, 여야를 가리지 않는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등 포퓰리즘적 구호만 난무한다. 여기에 이념성향을 넘나드는 합종연횡까지 예상되면서 각 후보들의 정체성마저 흐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느리게 가는 대선 시계… 어게인 2002년 가능성 = 대선이 코앞인데 정치권의 대선시계는 느리게만 간다. 새누리당에선 일찌감치 박근혜 대선후보를 확정했지만, 야권은 누가 본선에 진출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민주당의 지역별 순회경선이 이달에 끝나더라도 안철수 교수의 출마선언을 기다려야 하고, 양측 사이에 ‘후보 단일화’ 일정도 남아 있다. 빨라야 10월 중, 늦으면 11월에나 야권 후보가 확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년 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이뤄낸 시점도 11월24일이었다. 대중들 사이에서 “도대체 야권 후보는 누구냐”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여도 야도 ‘경제민주화’, ‘복지확대’ 외쳐= 이번 대선의 특징 중 하나는 차별화된 공약이 없다는 점이다. 2007년 대선에선 새누리당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박근혜 후보의 ‘열차페리’, 민주당 정동영 후보의 ‘개성공단 10개 건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재벌개혁을 위한 경제민주화, 복지 확대 등에만 열을 올릴 뿐 내로라할 만한 뚜렷한 공약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경제민주화 정책은 우리가 원조다”라며 싸울 뿐이다. 복지가 중요시되는 시대적 흐름과 맞물린 측면도 없지 않지만, 공약의 차별성이 떨어지면 유권자 입장에선 “아무나 뽑아도 다 똑같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 표만 얻을 수 있다면 정체성은 뒷전 = 이번에도 합종연횡이다. 박근혜 후보는 ‘국민대통합’을 내세워 보수진영 뿐 아니라 진보진영 인사들까지 대거 끌어들이고 있다. 좋게 말하면 통합이고 나쁘게 보면 야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민주당 출신의 김종인 전 의원을 국민행복특위 위원장에 앉혔고,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이른바 ‘차떼기’ 대선자금 수사를 했던 안대희 전 대법관을 정치쇄신특위 위원장에 임명했다. 장하준, 최장집, 이외수, 정태인 등 진보진영 저명인사들의 영입작업도 꾸준하다.
야권은 동상이몽이다. 민주당은 향후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 후보단일화를 기정사실화하며 자체 경선을 진행 중이고 단일화 방식에 대한 밑그림도 그려 놨다. 그러나 안 교수가 민주당의 기대에 부응할진 미지수다. 민주당이 제시하는 단일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단일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안 교수는 특히 민주당 뿐 아니라 정운찬 전 총리와 같은 여권 인사를 아우른 재야의 제3지대에서 대선을 치를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단일화가 성사돼도 민주당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그래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