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울린 '디스커버리' 역이용한 SK하이닉스 웃었다

입력 2012-09-2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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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램버스에 소송 관련 모든 자료 제출 요구…일정기간 자료 누락 확인

미국에서 벌어진 특허소송전에서 SK하이닉스는 램버스에 역전승을 거뒀고, 삼성전자는 애플에 뼈아픈 패배를 당했다. SK하이닉스 승리의 일등공신은 바로 상대방에 증거를 요구하고 PC의 하드디스크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디스커버리’제도다. 반면 삼성전자는 ‘디스커버리’때문에 완패했다. 같은 제도로 인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SK하이닉스와 램버스의 소송전은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램버스는“하이닉스가 중앙처리장치(CPU)와 D램 메모리 간 데이터 교신 효율화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지난 2009년 1심 재판부는 하이닉스에 대해 3억97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초기에 SK하이닉스는 공학적 설명을 통해 램버스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은 수세에 몰렸고 하이닉스는 ‘디스커버리’로 전략을 수정했다. 2005년 램버스에 “특허 출원 당시 이메일과 내부보고서 등을 전부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SK하이닉스는 제출받은 자료를 집중 분석, 일정 기간 램버스의 자료가 통째로 누락된 사실을 발견하고 램버스의 불법 자료파기 가능성을 집중 제기했다. 디스커버리에 따라, 증거 수집 중에 이메일 등 자료를 누락하거나 삭제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소송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결국 재판부는 램버스가 불리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고의적으로 파기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SK하이닉스가 새롭게 꺼내든 무기(디스커버리)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SK하이닉스가 미국 램버스와의 특허소송에서 '디스커버리(증거수집제도)'를 활용해 역전승을 거뒀다. 미 캘리포니아 북부지방 법원은 특허침해 소송 환송심에서 램버스의 불법 자료파기 사실을 인정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청주공장 모습.(사진제공=SK하이닉스)
반면 삼성전자는 디스커버리 제도로 인해 애플과의 미국 소송전에서 뼈아픈 패배를 했다. 지난 8월 배심원 평결 전 삼성전자의 회사 보안시스템인 ‘이메일 자동삭제 기능’이 관련 자료를 일부 삭제한 것이 문제가 됐다.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사내 네트워크인 ‘싱글’은 용량 과부하와 기밀 정보 유출 방지 등을 위해 모든 이메일이 2주가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개인이 중요 메일이라고 판단해 별도로 저장할 경우에만 자료가 남는다.

이 사실이 법정에서 ‘자료 고의누락’ 행위로 내몰린 것이다. 애플은 또 디스커버리 제도를 이용, 갤럭시S 개발 당시의 사내 문건을 통째로 요구했다. 그 결과 2010년 2월10일 신종균 당시 무선사업부장(사장)과 내부 직원들의 간담회 내용이 적힌 이메일이 공개됐다. 이메일을 살펴보면 아이폰 성공으로 인한 후폭풍에 큰 위기의식을 느낀 신종균 사장이 내부 직원을 독려하는 부분이 낱낱히 드러나 있다. 배심원들은 이를 토대로 삼성이 아이폰을 베꼈다고 결론을 내렸다.

◇용어설명

△디스커버리(Discovery·증거수집제도) = 미국의 특허소송 관련 규정으로 재판 전에 소송 당사자가 상대 회사나 제3자로부터 소송과 관련된 모든 증거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한 것. 종이 문서뿐 아니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동영상과 이메일 등 전자기록도 디스커버리의 적용 대상이다. 특히 정보·기술(IT)의 발전에 따라 전자기록을 가리키는 이른바 'e-디스커버리'가 디스커버리 제도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증거 수집 중에 이메일 등 자료를 누락하거나 삭제했다는 사실이 드러날 경우 소송에서 매우 불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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