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유럽 시장을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유럽 시장 침체가 올 중순의 예상 수준을 벗어났다. 현대차는 최근 올해 유럽 시장에서의 성장률을 15%에서 10%로 낮춰잡았다. 고삐를 조이지 않으면 한 자릿수 성장에 머무를 수 있다.
더욱이 프랑스 등 현지 정부의 견제가 거세지고 있다. 정 회장은 유럽 시장의 전열을 재정비 할 때로 본 것이다.
최근 파리모터쇼에서 기자와 만난 양웅철 현대·기아차 부회장은 “정 회장이 유럽 시장의 침체와 관련해서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 부회장은 이어 “정 회장의 유럽 시장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커졌다”며 “특별히 신경쓰라고 임원들에게 주문했다”고 덧붙였다.
정 회장이 유럽 시장을 주시하라는 주문을 내린 것은 3개월여 만이다. 그는 지난 6월 경영전략회의에서 “유럽을 눈여겨보라”고 지시했다. 유럽 재정위기와 관련해 위기 대응 체제를 갖추라는 강조다.
이후 그는 중국과 미국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난 8월에는 미국 기아차 조지아 공장·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을 둘러봤다. 미국의 자동차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어 점검이 필요했다. 또 일본차의 공습에 대응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정 회장의 우선순위는 유럽으로 돌아왔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유럽에서 69만대(현대차 40만3000대·기아차 29만1000대)를 판매했다. 올해는 82만대(현대차 46만5000대·기아차 35만6000대)를 판매할 목표를 세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양 부회장은 “유럽에서의 판매 목표를 크게 낮췄다”고 말했다.
마크 홀 현대차 유럽법인 마케팅 이사는 “경제가 좋지 않아 2013년은 전망이 어렵다”며 “아직 시장점유율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로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강화되는 것도 걸림돌이다. 김용성 기아차 파리법인장은 “프랑스 정부 외에는 아직까지 덤핑 조사 요구 등을 제시하는 국가는 없지만 이 같은 기조가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나라 정부는 프랑스 정부가 유럽연합(EU)에 현대·기아차의 덤핑 조사를 촉구한 것과 관련 EU와 협의에 나섰다.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지난달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EU 공동위원회에서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파리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관계자는 “공식 항의나 프랑스 정부에 제재를 요청한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며 “프랑스 정부의 추이를 보고 정부가 대응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최재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