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정권 교체로 중단됐던 일본 재계와 자민당의 밀월관계가 다시 무르익을 조짐이다.
제1 야당인 자민당의 아베 신조 당수는 9일(현지시간) 일본 경제단체연합(이하 게이단렌)과의 정책 대화에 참석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0일 보도했다.
게이단렌이 개각한 지 얼마 안 된 정부와 여당을 배제하고 야당과 먼저 만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신문은 재계의 이같은 행보가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며 자민당 역시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재계에 구애의 손짓을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로 이날 양측의 대화는 자민당이 여당이던 시절, 재계와의 밀월관계를 방불케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간사장은 이날 대화에서 “차기 중의원 선거는 매우 중요하다. 재계의 지원을 바란다”며 게이단렌 간부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베 총재 역시 대화 후 기자 회견에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엔고를 진정시켜 경제를 확실히 성장시킬 수 있는 계획을 추진해줬으면 좋겠다는 주문을 받았다”며 재계와의 친분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민주당도 자민당과 같은 시기에 당 지도부를 쇄신, 개각을 단행한 직후다. 신문은 그럼에도 게이단렌이 야당인 자민당과의 대화를 우선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완전히 우연”이라며 “오늘 밖에 일정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민주당은 재계와 자민당의 재회에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게이단렌은 원전 정책을 둘러싸고 이미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 그나마 재계와 줄을 대던 마에하라 세이지가 국가전략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민주당과 게이단렌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상태다.
자민당과 게이단렌은 이날 대화에서 민주당이 결정한 ‘2030년 원전 제로’ 방침을 재검토하기 위해 마주했다. 게이단렌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해 지난달 일본상공회의소·경제동우회와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항의했으나 민주당은 이를 철회하지 않고 있다.
자민당의 아베 총재는 이같은 상황을 활용, 9일 대화에서 “원전 정책은 경제 성장과 고용 창출을 위해 책임있는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며 재계의 편을 들어줬다. 그는 재계가 요구하는 성장 전략을 세우기 위해 ‘일본재생본부’를 설치, 정권 탈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자민당은 외교 면에서도 적극적이다. 아소 다로 전 총리는 8일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했고 다카무라 마사히코 전 외무상도 부총재 취임 직전 중국을 방문, 영유권 분쟁으로 벌어진 한국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다.
요네쿠라 회장은 “자민당의 사회보장과 성장 전략은 확실히 실감할 수 있다”며 “에너지 정책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대체로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신문은 요네쿠라 회장이 원래 노다 요시히코 총리를 지지해왔으나 자민당과의 대화 후에는 시선을 자민당 쪽으로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자민당은 지난 2009년 총선에서 패해 1955년부터 유지해온 정권을 54년 만에 민주당에 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