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2위의 폴리실리콘 생산업체인 한국실리콘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지난 28일 돌연 기업회생절차(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이날 만기 도래한 어음 80억원을 막지 못해 1차 부도 처리되기도 했다. 태양광시장 예측 실패와 지난달 준공한 여수 2공장(연산 8500톤)의 무리한 투자가 화근이 됐다.
한국실리콘은 여수 2공장 건설 투자금 약 5000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에쓰오일(S-Oil)로부터 2659억원의 직접투자를 유치했다. 당시 에쓰오일은 33.4%의 지분을 인수하며 오성엘에스티(34.1%)에 이어 한국실리콘의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추가로 필요한 자금은 우리은행 등 대주단으로부터 3000억원의 신디케이트론(1년 만기)을 받았다. 회사 측은 3000억원 중 일부(1300억원)를 기존 대출금상환에 사용하고 약 700억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2011년 2공장 증설에 들어갔다. 재원 마련을 위해 신디케이트론 연장 및 증액, 기업공개(IPO)를 통한 자금 확보 등 여러 방안을 동시에 추진했다. 하지만 kg당 70달러 이상인 폴리실리콘 가격은 최근 20달러 이하로 급락하는 등 시장 악화로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 수익성 역시 추락하며 유동성에 큰 위기가 닥쳤다.
이후 한국실리콘은 오성엘에스티 계열사이자 3대 주주인 수성기술로부터 지난 9월 200억원(전환사채)을 지원 받고 에쓰오일에 ‘SOS’를 보냈다. 1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참여를 통해 추가 지원을 요청했던 것. 역시 태양광 업체인 오성엘에스티도 추가 지원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믿을 곳은 에쓰오일 뿐이었다. 에쓰오일은 그러나 지난 23일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한국실리콘의 유상증자 참여를 검토했으나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에쓰오일의 이 같은 행보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주주가 외국기업(아람코)이다 보니 ‘모험’ 보다는 ‘안전’을 택했을 가능성이다. 태양광 시장이 침체 일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태양광 시장이 워낙 불확실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기업회생 절차에 따른 주식(지분) 감자 손실과 관련해서는 “지금 단계에서 얘기하기는 어렵다”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아람코의 한국시장 직접 진출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아람코는 지난 5월 국내에 지사를 설립하고 2차전지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사업 추진을 구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주주가 별도의 신재생에너지사업을 위해 한국지사를 설립한 만큼 에쓰오일 입장에서는 성격이 겹치는 한국실리콘 추가 지원에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에쓰오일 관계자는 “아람코 한국 지사와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이번 한국실리콘 상황과도 무관하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