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최부잣집에서 배운다]무사징연(無事澄然), 일 없을땐 마음을 맑게… 퇴임 후 행보 더 중요

입력 2013-02-08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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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부잣집 사랑채 현관에는 ‘대우헌(大愚軒,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대우’란 최부잣집 9대조 최세린의 겸양이 담긴 아호(雅號)였다.

새 정부 출범이 보름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장차관 등 상당수 고위공직자가 공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공기업 사장들도 줄줄이 교체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새 정부에 부담을 주기 싫다며 임기 8개월여 앞두고 사의를 표명해 공기업 수장이 줄줄이 자진 사퇴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공직에서 물러나는 고위공직자나 공기업 수장 중 일부는 잠시 쉰 뒤 다시 공직 활동을 할 수 있고 일부는 야인으로 남는다. 이들은 사회지도층으로서 공직에 머물 건 야인으로 활동하든 간에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들이 퇴임 후 사회 일원으로서 활동할 때 불미스러운 일로 입방아에 오르거나 행동을 올곧게 하지 못하면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고위공직을 지낸 많은 이들이 정권 교체 후에도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보다 야인으로 남아 세계 평화의 전도사로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전직이 현직 때보다 더 빛난다’는 칭송을 받는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현재 그는 고령(89)임에도 세계를 누비며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권교체로 공직에서 물러나는 고위공직자나 공기업 수장도 카터 전 대통령처럼 퇴임 후 현직 때보다 더 사회지도층으로서 의무를 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12대 만석 부를 유지한 경주 최부잣집이 실천한 ‘육연(六然)’ 중 ‘무사징연(無事澄然)’의 정신은 시사하는 바 크다. 무사징연은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라는 말이다. 공직이나 기업을 떠나 잠시 쉴 때 그동안 쌓였던 찌든 때를 벗어버리고 최부잣집처럼 마음을 맑게 정화할 필요가 있다.

경주 최부잣집 1대조인 최진립은 임진왜란 당시 벼슬길에 올라 큰 전공을 세웠지만 전쟁이 끝나고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시골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고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가 사는 집 문 밖에는 냇물이 모여 연못이 됐는데, 그 위에 바위 언덕이 평탄해 돈대(평지보다 높직하게 두드러진 평평한 땅)가 됐다. 최진립은 그 경치를 사랑해 즐기면서 일상의 취미로 삼았다. 당시 관에서 사사로이 고기 잡는 행위를 금했으나 냇가에 사는 자들이 금령을 어기는 경우가 많아 평소 최진립은 이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루는 아들이 생선 반찬을 올리자 최진립은 “이 물건이 어찌하여 이르렀는가. 예가 아닌 것으로 봉양하면 그 능히 목구멍에 넘어가겠는가”라며 그 그물을 가져오게 해서 불태웠다고 한다. 그는 예법에 벗어나는 것을 늘 경계했고 자신을 단속함이 엄했다.

최부잣집의 이러한 무사징연 정신은 9대조인 최세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세린은 정종 신해년에 태어나 스물여섯 살 때 성균 생원에 급제했으나 가훈을 받들어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초야에 은거하며 학문에 정진했다고 한다. 최세린은 풍모가 의젓하며 재능이 뛰어나고 도량이 넓었으며 속되지 아니하여 향리에서 칭송이 자자했다고 한다.

‘대우(大愚)’라는 그의 아호(雅號)에서도 그의 성품을 엿볼 수 있다. 대우는 ‘크게 어리석어라’라는 의미로 스스로 어리석음을 자처함으로써 상대방의 경계심을 없애고자 한 것이다. 최세린은 인품이 깔끔하고 여러 선비와 사귀기를 즐기며 조상의 정신을 묵묵히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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