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대표자 또는 통치그룹이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면 그 나라의 정부와 정치는 정치적 엘리트주의에 물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하지만 국민의 대표자 또는 통치세력이 근본적으로 일반 국민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는 경우이다. 그들은 국민보다 사회적 지위, 정보, 권력, 교육, 재산, 조직력, 심지어 정치와 정부를 이해하는 능력까지 월등하다.
둘째, 그들의 출신배경이 여러 측면에서 국민보다 월등한 경우이다. 이것은 열등한 조건에 처해 있는 국민이 대표자그룹이나 통치그룹으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봉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모스카는 엘리트주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였다. “모든 사회에는 두 가지의 계급이 존재한다. 그중 하나는 통치계급이요, 다른 하나는 통치를 당하는 계급이다. 통치계급은 수적으로 열세이나 모든 정치적인 기능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독점하며, 그 권력이 만들어내는 이익을 향유한다. 반면 피통치계급은 수적으로 우세하나 통치계급에 의해 지도되고 통제당한다.”
대부분의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관료집단과 기술·경영 엘리트는 일반국민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중요한 결정권을 행사한다. 지식인과 언론인들도 사회의 중요 가치를 상당 부분 결정하고 전파하며, 공공정책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이외에도 엘리트주의와 관련하여 나라마다 특별히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을 수 있는데 미국은 인종, 중동국가들에서는 종교가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문제는 엘리트집단의 행위가 사회적 연대감에 상처를 내고 국민 사이에 갈등과 괴리의 진원지가 될 때이다. 뿐만 아니라 엘리트집단의 행위는 때로 자유민주주의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국민으로부터 혐오와 거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악의 경우 나라가 외적의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는 엘리트집단의 경거망동이 나라를 패망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 과정이란 근본적으로 매끄러울 수 없는 특성을 가졌다고 말한다. 불평등과 불균형과 부정부패가 사라진 국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도덕과 윤리가 밥 먹여 주는 것이 아니며,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한다. 엘리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국민의 먹거리를 만들어낼 능력이라고 한다. 성장동력을 창출할 능력이 있다면 다른 것들은 대충 눈 감아주고 넘어갈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참으로 향기롭고 도량이 넓은 말씀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국민에게 쉽게 넘길 수 없고 가장 마음이 쓰이는 것이 바로 그런 것들이라면 무어라 할 것인가. 큰 일 하는 통 큰 분들에게는 하찮을 수 있는 바로 그것이 수많은 보통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실망하고 허탈하게 하며 분노로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라면 무어라 말할 것인가.
그런 종류의 합리화와 변명으로 민심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하기 위한 설득도, 대의를 위한 동참과 복종도 가능하지 않다. ‘민주화’되었다는 말이 무색한 후진적 정치, 사회에 만연된, 특히 엘리트층에 고질적으로 뿌리박힌 도덕 불감증,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엘리트집단으로부터 그 누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읽을 수 있을 것인가.
사회가 한낱 탐욕스러운 인간들의 무리가 아니라 생명적 공동성과 연대성을 가진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엘리트주의적 불평등, 불균형, 편견이 타파되어야 한다. 누구보다도 먼저 엘리트집단이 부와 권력과 사회적 지위의 획득에서 정당성과 절제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홀히 하였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의 내면화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연후라야 우리 사회는 국민이 행복하고 엘리트집단이 국민의 가슴에 존경심으로 받아들여지는 생명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