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한 환자의 형은 자신의 동생을 만나겠다며 병원을 찾는다. 감염을 막아야 하는 의료진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시신을 당연히 격리한다. 의사이기 이전에 상식이다. 하지만 형은 동생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피우며 의사를 때린다. 이 의사는 감기도 치료하지 못했을 뿐더러 환자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최근 지방의 모 응급실에서 한 남성이 앉아 있던 여의사 얼굴에 의자를 휘두른 사건이 있었다. 자기보다 늦게 온 소아 환자를 먼저 진료했기 때문이란다. 알고 보니 소아 환자는 위급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응급의료법상 의사는 중한 환자를 우선 진찰해야만 한다. 법 이전에 상식이다. 해당 병원의 CCTV가 언론에 공개됐고 여의사에게 가한 무차별 폭력에 의사들은 분노했다.
의료진을 향한 폭력은 최근 들어 더 크게 이슈화가 되고 있다. 여기엔 대중매체도 분명 한몫하고 있다.
물론 국내외 어느 드라마나 영화에서 의사에 대한 폭력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런데 국내 대중매체에는 의료진을 때리는 장면이 특히 자주 등장한다. 실험을 해보자. 수술방에서 큰 수술을 끝내고 나온 의사가 '애도의 말'을 하면 다음은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가. 십중팔구는 멱살을 잡힌다. 의사는 땅만 보고 있다. 환자를 살리기 위해 피를 뒤집어 써가며 고군분투한 의사에게 '오랜 시간 수술 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반응은 일반화되지 않는다. 극의 맛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다. 이쯤되면 연간 5000건이 넘는 의료진 폭행 사건이 대중매체 속 의료진 폭행 장면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게 이상할 정도다.
인간의 학습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대중매체를 통한 학습은 더하다. 폭력적인 영상은 시청자들의 무의식 속에 폭력을 각인시킨다. 제작자와 관객 모두 이를 의식하고 대중매체를 바라볼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