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기자가 하는 말은 너무 믿지 마라.’ 얼마 전 강연에서 서두에 이 말을 했더니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쓴웃음을 지었다. 기자의 강연을 듣는데 초장에 이런 말을 들으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 데는 이유가 있다.
반도체산업의 시작은 1948년 12월 23일 미국 벨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의 작동 원리가 확인되면서다. 당시 연구를 지휘한 사람은 윌리엄 쇼클리, 실험을 담당한 사람은 WH 브래튼, 이론 해석을 담당한 사람은 J 바딘이었다. 세 사람 모두 노벨상 수상자다. 이 중 바딘은 나중에 초전도를 발견해 노벨물리학상을 두 번이나 받는 영광을 누렸다.
벨연구소 측은 트랜지스터 발명 사실을 쉬쉬해 오다 1948년 6월 30일 드디어 일반에 공개했다. 일반에 공개된 음성 증폭기 마이크에서는 브래튼이 “왓슨, 잠깐 이쪽으로 오게”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레이엄 벨이 1876년 전화기 실험에서 외친 유명한 말이다. 많은 전문지와 일반신문 기자들이 몰려가고 다방면의 연구자들이 흥분했지만, 일반 언론은 그 중대함을 깨닫지 못해 대부분 그 사실을 무시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이를 접했지만 작게 다루는 데 그쳤다.
트랜지스터 발견으로 시작된 반도체산업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해 약 50년간 연율 12%의 성장을 지속했다. 최근에는 다소 주춤하지만 25조 엔 규모의 거대 시장을 이루는 데 도달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정도의 폭발적 성장을 이룬 산업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반도체산업은 기적의 성장 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1948년 당시 신문 기자들은 이 트랜지스터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의 대발견이었음에도 이 트랜지스터가 열 미래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트랜지스터는 IC, LSI로 집적도를 높여 가고 있다. 이러한 반도체가 아니면 LCD TV, 컴퓨터, 휴대전화, 스마트폰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성을 파악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현재 눈앞에 보이는 것, 일어나고 있는 것, 말들이 세계 역사를 바꿔 버릴 만큼 중대한 일이라고 해도 우리는 흔히 놓치고 만다. 그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신문 기자의 몫이다. 1948년 당시 대형 신문사 기자들은 트랜지스터의 뜻을 몰랐다. 기자만 탓할 것도 아니다. 발명 당사자인 윌리엄 쇼클리조차 “이 트랜지스터를 어디에 응용할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보청기 정도나 될까?”라고 답하는 수준이었으니 발명자들도 오늘날 같은 반도체 세상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트랜지스터의 가치를 그나마 빨리 알아본 것이 일본 소니였다. 소니는 놀라운 속도로 트랜지스터를 사업화해 1955년 전설이 된 트랜지스터 라디오 ‘TR55’를 출시한다. 당시 소니의 회사명은 도쿄통신공업으로, 존재감이 낮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했다. 오늘날 소니의 성장 신화 배경에는 트랜지스터의 기술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셈이다.
기자는 오랫동안 가전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판단 실수를 많이 했다. 1979년의 일이다. 소니는 젊은층의 패션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꾼 획기적인 상품 ‘워크맨’을 발표했다. 이 발표에 앞서 소니의 임원회의에서는 “스피커도 없고, 녹음도 할 수 없는 기계는 팔리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론이 거셌다. 그러나 소니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 명예회장의 결단으로 워크맨은 세상에 나왔다.
초기에 워크맨은 잘 팔리지 않았고, 발표회장에서도 기자들은 냉소적이었다.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이 불과 12줄짜리 기사를 실었을 뿐 다른 신문은 거의 무시했다. 그러나 출시 2개월 만에 워크맨은 거의 모든 매장에서 품절 사태를 빚었고, 비로소 세계적 히트 상품이 됐다. 필자 역시 워크맨 출시에 냉소적인 기자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워크맨의 가치를 깨닫지 못한 사실을 크게 후회했다. 거기서 얻은 교훈은 모든 제품 개발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축으로 파악하고, 젊은이들의 생활 문화를 정확히 내다보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갤럭시’의 세계적 성공은 바로 젊은이들의 경향을 파악한 선견지명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