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송포유’, 학교폭력 피해자를 두번 죽이다 [최두선의 나비효과]

입력 2013-09-24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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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포유' 방송화면(사진 = SBS)

“그동안 말을 못했지만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와서 절 괴롭혔어요. 3월 중순에 XXX라는 애가 같이 게임을 키우자고 협박해서 매일 컴퓨터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 게임에 쓴다고 매일 돈을 달라고 했어요. 등수는 떨어지고 2학기 때쯤 일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12월 들어 자살하자고 몇 번이나 결심을 했는데 그 때마다 엄마 아빠가 생각나서 저를 막았어요. 그 녀석들 때문에 엄마한테 돈 달라 하고, 화내고, 매일 게임하고, 공부 안하고 계속 불효만 했어요. 전 너무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엄마에게 너무 죄송했어요. 하지만 내가 사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가족이었기에 쉽게 죽지는 못했어요. 그냥 부모님한테나 선생님, 경찰 등에게 도움을 구하려 했지만, 걔들의 보복이 너무 두려웠어요.”

“항상 저를 아껴주시고 가끔 저에게 용돈도 주시는 아빠 고맙습니다. 매일 제가 불효를 했지만 웃으면서 넘어가 주시고 저를 너무나 잘 생각해주시는 엄마 사랑합니다. 항상 그 녀석들이 먹을 걸 다 먹어도 나를 용서해주고 나에게 잘해주던 우리 형 고마워. 모두들 안녕히 계세요.”

A4용지 4장에 빼곡히 적힌 이 글은 2011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구 중학생 의 유서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보복의 두려움에 혼자 괴로워하는 피해자의 심정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유서 곳곳에 묻어있다.

이 가슴 아픈 비극은 가해자들의 ‘잔인한 장난’에서 비롯됐다. 또래를 상대로 한 중학생들의 괴롭힘은 피해자의 목숨을 빼앗았고, 부모ㆍ형제에게는 씻을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줬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철이 없고 어리다는 이유로, 교화의 목적으로 용서 받는다.

SBS ‘송포유(Song for you)’에 출연한 학교폭력 가해자들은 “학교는 2번 짤렸다. 애들 땅에 묻고 그랬다. 좀 격하다 우리가 친구들끼리”, “고등학교 1학년 때 폭행으로 전치8주의 부상을 입혔다. 그냥 쳤는데 기절하더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불쾌하다 못해 분노를 자아냈다. 그들의 표정, 발언, 말투, 행동에서는 어떤 반성의 기미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행도 소년원 경험도 이들에게는 무용담에 불과했다.

‘송포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반성의 태도는커녕 죄책감조차 없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방송에 내보내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혔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이 연일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피해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가정의 아픔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들을 전면에 내세워 노래로 치유한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누구를 치유한다는 말인가.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피해자들은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시도 때도 없이 분노하거나 타인에 대한 적대감, 불면증, 불신 등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다.

‘송포유’의 연출을 맡은 서혜진 PD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학생들 인터뷰의 취지는 어떻게 이 학교에 오게 됐나를 보여주는 것. 거기에 대고 ‘피해자에 대해 사과해’라고 하는 것은 교조주의적이고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항변했다.

단순히 사과의 문제가 아니지만 이들은 사과라도 했어야 했다. 연출진은 가해자들이 이미 죄값을 치뤘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모습은 피해자에게 이전과 똑같은 공포로 다가왔을 것이다.

‘송포유’가 진정 이들의 순화와 또 다른 의미있는 도전을 위해 합창대회를 기획하고 이승철, 엄정화에게 지도를 부탁했다면 순화와 도전의 대상의 현 상태와 기본적 인성에 대해 인식하고, 피해자를 배려해 방송을 만들어야 했다. 온몸에 문신을 하거나, 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학교생활에 불성실한 태도는 차치하더라도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가중시키는 태도는 내보내서는 안됐다. 가해자들의 도전과 순화만큼이나 피해자들의 ‘치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제작진이 일부 출연자의 노래를 듣고 공포와 분노에 몸서리를 칠 피해자를 단 한번이라도 생각했어야했다. 그렇다면 방송은 달라졌을 것이고 시청자도 비판과 비난 대신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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