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 막바지에 터진 ‘동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의혹’과 관련, 전·현직 간부의 이름이 거론되면서 해묵은 국세청 쇄신 문제가 또다시 불거졌다. 국감 초반 ‘우려먹기’식 쇄신안으로 난타 당했던 국세청으로선 수난의 연속이다.
국세청의 쇄신문제가 도마에 오른 건 국감 첫날인 지난 달 21일부터였다. 국세청이 8월 발표한 ‘국세행정 쇄신방안’을 두고 여야 없이 비판이 쏟아졌다.
전군표 전 국세청장과 허병익 전 차장, 송광조 서울국세청장 등 당시 전·현직 간부가 CJ그룹으로부터 세무조사 관련해 뇌물을 받은 혐의가 제기되면서 신뢰도가 추락하자 내놓은 쇄신안이었지만 과거 쇄신안의 재탕에 불과하다는 주요 지적이었다. 사실상 국세청 자체적으로는 쇄신이 불가능하다는 판정 하에 외부감독기구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봇물을 이뤘다.
새누리당 안종범 의원은 2000년 이래 역대 청장들이 취임 직후 내놓은 쇄신안을 분석, 조사실명제나 특별감찰팀 도입 등 상당수가 이행되지 않거나 오래지 않아 폐지됐다면서 국세행정 개혁을 위한 외부감독위원회 신설을 주장했다.
민주당 문재인 의원은 “올해도 국세청 전·현직 고위 간부들이 비리로 구속된 건 역대 청장마다 발표한 개혁방안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라면서 “그런데도 과거 쇄신안을 재탕삼탕하는 수준으로 국민 불신을 씻겠나”라고 세무조사 법제화를 압박했다.
국세청 직원의 기강해이와 국세청의 안일한 대응 비판도 단골메뉴였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정권 초반 공직기강이 강화됐음에도 올 들어 금품수수 등으로 징계 받은 직원이 예년과 비슷하게 40명을 넘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최재성 의원은 향응접대성 골프행위 24건을 적발하고도 3건을 빼곤 모두 경고로 끝냈다면서 “왜 징계 받은 내역을 감추느냐, 마피아 집단이냐”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김덕중 청장은 이번 쇄신안이 과거보다 진일보됐다고 자평하며 금품수수 등 비리사건엔 엄정 조치를 약속하는 등 거듭 쇄신의지를 강조했지만, 31일 종합감사에서 불거진 동양그룹 세무조사 무마의혹은 국세청을 다시금 수렁에 빠뜨렸다.
이 의혹은 국세청이 2009~2010년 동양그룹에 대한 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통해 7000억원의 비자금 조성 및 탈세혐의를 포착하고도 고위 간부의 외압으로 덮었다는 게 골자다. 동양 세무조사 당시 서울청 조사1국장, 본청 조사국장으로 각각 재직한 송광조 전 서울청장이 중심인물이지만 당시 서울청 조사4국장을 지낸 김연근 국제조세관리관 등도 관련성을 의심받고 있어 국세청으로선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여기에 의혹을 제기한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으로 5만여 명의 피해자를 낸 동양 사건의 원인제공자로 국세청을 지목, 국세청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달 25일 동양 사건과 관련해 벌인 서울청 조사4국 압수수색 결과 이 같은 의혹이 일부라도 사실로 드러나면 국세청에 대한 여론은 악화일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김 청장은 “특정되지 않은 구체적 사안과 관련해 특정인이 거론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박 의원은 “검찰조사 결과 국세청의 세무조사 부실, 축소 사실이 확인되면 청장과 고위관계자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