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을 맞은 봄꽃들이 환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산책이 더욱 즐거운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서울의 대표적 산책로로 꼽히는 인왕산 자락 종로구 부암동 뒤편에 무계원(武溪園)이라는 한옥 건축물이 2년여 공사 끝에 20일 개원식을 갖고 방문객을 받기 시작했다.
무계원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의 별장터 바위에 새겨진 무계동(武溪洞)에서 따온 이름이다. 안평대군은 이 자리에서 안견에게 자신이 꿈 속에서 본 신선계의 광경을 전했고, 안견을 이를 3일 만에 몽유도원도로 재현했다. 안평대군은 또한 현 무계원 자리에 무계정사(武溪精舍)를 지어 글을 읊고 활도 쏘면서 심신을 단련했다.
이런 역사가 숨어있는 공간에 서울시와 종로구가 옛 한옥의 아름다움을 더해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으로 새롭게 탈바꿈해 개장한 것이다.
무계원의 개원에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문화적 가치가 높은 대표적인 상업용 도시한옥이며 우리나라 요정 1호인 옛 오진암(梧珍庵)의 대들보와 서까래, 기와 등을 가져와 무계원 복원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소궁궐로 불릴 정도로 건축미가 뛰어났던 오진암은 1953년 서울시에 최초로 등록된 식당이자, 1970~80년대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손꼽히던 곳이었다. 조선시대 말기 내관 출신 화가인 이병직이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요정정치가 한창인 1972년 당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박성철 제2 부수상이 만나 7·4 남북공동성명에 대해 논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요정으로 명성을 떨쳤던 오진암 등 요정집들은 1990년대 들어 강남 등지에 룸살롱 등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오진암은 2010년에 철거돼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필자가 방문한 22일은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무계원 주위 등산길로 등산과 산책을 나왔다. 하지만 개원한 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무계원에는 홍보가 덜된 탓인지 방문객이 적어 다소 한적했다.
사주문 형식을 살린 무계원 대문을 지나면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사랑채 등 세개의 건물과 함께 아담한 앞마당이 나타난다. 마당 한가운데 위치한 목련나무가 3월의 봄바람에 하나둘 꽃봉오리를 맷어 가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 바로 마주한 안채는 다른 건물에 비해 오진암의 정취를 더 느낄수 있다. 옛 오진암의 자재들을 가장 많이 활용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들보와 서까래, 기와 등 구석구석 100년 넘은 세월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실제로 대들보에는‘오진암 한옥을 옮겨 짓기’라는 글귀가 굵은 궁서체로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랑채는 경사지를 이용한 루(樓)의 형식을 도입했다. 사랑채에 오르면 아래에 있는 안마당과 부암동 일대의 아름다운 경관을 두루 굽어볼 수 있다.
행랑채는 청진동지역에서 출토된 발굴석으로 조성한 석축 위에 5량가(五樑架) 구조로 구성됐다.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에선 인문학 분야의 원로들이 릴레이 강연을 진행한다. 안휘준·금장태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세종시대’와 관련한 인문학 강의를, 이종상 서울대 명예교수가 전통 영정화 최고위 과정등 문화 강좌를 이끌어 갈 예정이다. 또한 다도 등 전통문화 체험행사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