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은행의 신규 설립이 없고 은행 수가 몇 개 안 되면 좋은 점도 있어 보인다. 감독당국은 은행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어 감독과 검사를 편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은행 경영진은 독과점 수익 덕분에 경영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 양호한 은행의 수익성으로 인해 금융시스템이 건전해 보이는 면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듯이 눈에 잘 보이진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부작용이 있다.
첫째, 괜찮은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형 은행들이 서로 합병하면 몇 년 이내에 좋은 일자리 몇 천개가 사라져 버린다. 한쪽 은행의 본점 직원은 거의 필요 없어지고 중복 지점도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소수 은행이 시장을 주도하면 여러 은행이 경쟁할 때보다 금리나 수수료, 이용 편의성, 금융 접근성 등에서 금융소비자가 불리해진다. 은행의 독과점 수익은 금융소비자보다는 은행 경영층이나 주주에게 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셋째, 은행들은 국내에서 쉽고 안전한 대출만 해도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기 때문에 금융 국제화, 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새로운 금융기법 개발 등과 같이 어렵고 복잡한 업무를 등한시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의 은행이 경쟁력 없고, 은행산업이 낙후된 근본적 이유일 것이다. 넷째, 대형 은행은 도산하면 국민경제의 피해가 크기 때문에 정부가 구제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대마불사의 믿음은 은행 경영층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켜 은행산업을 더욱더 위험하게 한다.
물론 은행 신규 설립 허용으로 은행 수가 늘어나면 문제도 있다. 가장 우려되는 것이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져 수익이 줄고, 망하는 은행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예금과 대출자 등 금융소비자 이익이 늘었다는 의미이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긍정적이다. 또한 소형 은행이 한두 개 망하는 것은 상호저축은행의 사례에서 보듯 국민경제 전체로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대형 은행이 망하거나 여러 소형 은행들이 동시에 망하면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밖에 없어 국민의 부담이 크다. 따라서 은행이 망했을 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지 않게 하는 것, 감독당국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 등이 은행 신규 설립과 함께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은행은 아무리 크고 역사가 깊어도 쉽게 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3곳을 포함, 세계적 대형 은행 여러 곳이 망하거나 공적자금 투입으로 겨우 살아났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때에는 한국의 은행산업을 주도하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이 모두 도산 상태에 빠졌다. 한국에서 이들을 대체한 은행은 규모가 작고 새로 설립된 신한·하나·한미은행 등이었다. 지금처럼 몇 개 안 되는 대형 은행들이 유사한 영업을 하는 한국에서 금융위기가 오면 금융시스템 전체가 더 불안해진다. 특히 은행의 신규 설립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의 대형 은행들이 망했을 때 이들을 인수할 국내 은행이 없을 수도 있다.
은행 신규 설립을 단계적으로 허용해 보자. 우선 지방은행이 없는 지역에서의 지방은행 설립, 우량 상호저축은행의 은행 전환, 인터넷 전문은행의 설립 허용 등이 좋은 정책 대안일 것이다. 감독당국이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 걱정했던 것만큼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새로 설립된 은행 중에서는 미래에 한국 은행산업을 이끌어 갈 은행이 나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