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 중인 신용정보집중체계 변경에 대해 금융권 각 협회는 “지금껏 제도적 테두리 안에서 신용정보를 관리해 왔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 등록돼 있는 은행연합회의 목소리가 가장 크다. 이들은 새로운 기구 설치는 비용만 발생할 것이라며 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각 금융권에 흩어진 신용정보를 통합해 종합신용정보집중기구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4월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이달 국회를 통과할 예정이다.
금융당국은 은행연합회에 신용정보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만큼 은행연합회의 해당 부서를 분리해 독립된 자회사(공공기관) 형태로 설립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사상 최악의 정보유출 사태로 홍역을 치른 만큼 개인정보 관리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며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용호 금융위원회 서민금융과장은 “과거 정보는 편리한 이용을 전제로 관리됐지만 최근 정보유출 사태를 겪으며 정보는 보호를 전제로 이용해야 하는 것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정보를 집중하겠다는 게 아니고 관리체계를 어떻게 가져갈지와 책임의 문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연합회는 당국의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는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업무 중복으로 수십억원의 비용만 발생할 뿐더러 신용정보 통합관리와 보안 강화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전혀 없다는 주장이다.
유윤상 은행연합회 상무는 “현재의 집중체계에서도 법, 시행령, 감독규정까지 대부분 (독립성·공공성 관련) 모든 사안이 규정화돼 있다”면서 “또 다른 조직을 세운다면 비용만 추가될 뿐”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구체적인 내용은 신용정보협의회에 의해 결정이 나고 이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에 사후 보고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중립성이 훼손될 일은 없다”며 “기존 은행연합회 체제에 개인정보보호전문가, 소비자보호단체, 학계 등 위원들이 참여해서 상위기구를 만들고 사전 심의를 도입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정부와 업권 간 의견이 팽팽히 맞서자 개인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정보 일원화 대책이 ‘밥그릇 지키기’ 싸움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내 모든 금융회사로부터 신용정보를 받아 관리 활용하는 종합신용정보집중기관은 은행연합회가 유일하다.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여신전문금융업협회, 정보통신진흥협회, 금융투자협회 등은 개별신용정보집중기관으로 등록돼 있다.
하루에 금융사들이 신용정보집중기관과 주고받는 정보 규모는 약 200만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인 수 기준으로 4400개사의 회원사를 둔 은행연합회에 쌓여 있는 개인 신용정보 건수는 1억3300만건에 이른다. 그만큼 은행연합회에 개인 신용정보가 집중돼 있다.
만약 공공기관화가 추진될 경우 은행연합회는 전체 임직원(150명) 가운데 신용정보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절반가량(70명)을 내보내야 한다. 정보 이관으로 이 업무가 사라질 경우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A금융권 관계자는 “신용정보 관리 기능을 분리하면 은행연합회 영향력이 크게 축소되고 로비 기능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