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회복이 절실했던 국토부는 대책 수립 때 마다 대출 규제 완화를 요구했지만,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매번 제외됐다.
당시 국내경제 상황은 녹녹치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주택시장 침체로 16개 중견 건설사가 구조조정 되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대형 저축은행이 대거 부실화됐다.
주택시장만 회복되면 건설사와 저축은행 모두 부실 위험을 피해 갈 수 있었지만 윤증현-진동수, 박재완-김석동으로 이어진 MB정부 경제팀은 마지막까지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세수 부족에도 대출규제 완화 대신 세제 혜택 카드를 섰다.
박근혜 정부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 등 남아 있는 부동산 규제를 풀며 주택시장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7년여 만에 주택시장에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신규 분양이 늘고 주택거래도 살아나고 있다.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을 맡은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한 술 더 떠 LTV·DTI를 풀겠다고 나섰다.
“지금은 한겨울인데, 한여름 옷을 입고 있다”며 그동안 어렵게 지켜온 대출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정도 대책으로는 경기 회복세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판단, 마지막 히든카드(대출규제 완화)로 경제에 군불을 지피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위험한 모험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최 후보자는 대출 규제 완화 → 주택수요 증가 → 주택가격 상승 → 가계자산 증가 → 가계지출 확대 →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기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여건을 고려해 볼 때 대출규제를 푼다고 해서 선순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수요’감소다. 저출산 노령화로 주택수요가 감소하고 있다. 또 독신, 이혼 등에 따른 1인 가구의 증가로 주택 수요보다 임대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두 번째는 소득불균형과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다. 우리나라 도시가구의 월 실질소득은 1990년 210만6000원에서 2013년 390만4000원으로 85.4% 증가했다. 그러나 소득불균형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같은 기간 0.256에서 0.280으로 도리어 9.5% 더 나빠졌다. 부(富)가 한쪽으로 쏠려 부자들이 집을 사주지 않는 이상 주택수요 증가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임대소득 과세 강화 방침이 발표되자 ‘거래 절벽’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대책 발표 4개월만에 임대소득 과세 인하를 결정했다.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도 향후 주택시장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요인이다. 소득이 늘지 않다 보니, 빚내 집살 생각도 못 하는 것이다. 최근 김상조 경제개혁연구소장(한성대 교수)가 발표한 '소득분배와 실효세율 추이 분석'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 보고서는 과세기준 미달자를 포함한 전체 소득 모집단의 중간값은 2012년 기준 연말정산 근로소득(총급여)이 1910만원으로 같은 시기 1인당 GNI인 2780만원에 크게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가구에서 소득이 없는 구성원을 고려하면 대다수 국민의 소득은 1000만원을 밑돈다는 게 김 소장의 분석이다.
세 번째는 부동산가격 상승 기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주택가격 상승기만 해도 서민들이 빚내 집을 장만했다. 그러나 소비자들도 이제 집값이 상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보니, 설사 구입자금이 있더라도 주택구매를 망설인다.
이처럼 소비자의 구매여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빚내 집 사길 권하는 정책은 실효성도 없고, 향후 거품이 꺼졌을 때 나타날 부작용도 크다. 지난 3월 말 가계부채는 이미 1200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분기마다 20조원 안팎 늘어났다. 그럼에도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는 가계부채에 불(LTVㆍDTI 대출 확대)을 댕기겠다는 최 후보자의 정책은 무모해 보인다.
최 후보자는 대출규제 완화를 통한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신기루만 보지 말고,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가계파산과 신용대란을 더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잊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