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와 아버지의 피눈물 [배국남의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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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벼락이다. 피눈물을 흘렸다. 21일 오후 8시 15분께 강원 동부전선 22사단 GOP(General Out Post,일반전초)에서 총성이 울려 퍼졌다. 임모 병장이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기를 난사해 김모(23)하사 등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한 군대 사고였다.
“TV에서 나온 사고 속보가 불길했는데 전화가 울렸다. 살아만 있어다오 그렇게 빌었는데...” 진모(21)상병 아버지 진유호(51)씨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다른 유가족도 사랑하는 아들, 동생, 형의 급작스러운 사망에 하늘이 무너진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22일 소총과 실탄을 보유한 채 탈영한 임모병장은 군과 대치하고 있었다. 임모 병장의 아버지는 죄인의 심정으로 아들에게 투항을 설득하며 절규했다.
임모 병장과 군이 극도의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던 22일 오후 5시, TV 화면에선 GOP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펼쳐졌다. 육군열쇠부대원과 연예인들이 경계근무의 엄중함에 관해 이야기 나누며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챙기며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TV화면을 가득 채운 것이다. 바로 MBC 예능 프로그램 ‘일밤-진짜 사나이’다. 관찰예능을 표방하며 리얼리티와 예능을 버무린 ‘진짜 사나이’에서 이날 방송된 것은 우연하게 GOP경계근무 내용이었다.
날것 그대로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는 취지에서의 ‘관찰’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관찰 예능의 대표주자 ‘진짜 사나이’의 22일 모습은 비극의 현실과 상반된 아니 양극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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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등 매스미디어가 보여주는 현실은 재구성 과정을 통해 실제의 사회 현실을 과장한 것이고 과장된 미디어 현실은 시청자의 현실인식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의 현실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허구일수 있고 실제 현실의 과장된 표현을 넘어 시청자들을 허구의 세계로 이끌지 모른다’는 가브리엘 와이만(Gabriel WeiMann) 교수의 ‘Modern Communicating Unreality:Mass Media and Reconstruction of Realities(매체의 현실구성론)’의 분석이 떠오른 순간이다.
예능과 드라마, 심지어 뉴스까지 미디어 속 모습(프로그램)은 철저히 재현되고 구성된 것이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에 의해 디자인되는 이미지와 텍스트를 소비하면서 현실과 삶속에서의 직접적인 경험, 정서 그리고 관계를 망각하며 미디어가 구축한 현실에 길들게 된다. 미디어에 재현되고 구성된 세계가 현실로 환치되며 인식의 근간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묘파한 것처럼 우리는 현재 매스미디어에서 구축한 이미지와 텍스트(시뮬라시옹)를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삶은 잡지 광고이며, 진실한 것은 신문지면의 한 개비의 담배인 것이다. 현실 세계는 MTV에서 펼쳐지는 끔찍하도록 환상적이고 무차별적인 다큐멘터리라는 확신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다.
병영생활, 육아 등 근래 들어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관찰 예능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제작진은 너도나도 날것, 그대로의 리얼리티를 강조한다. 편집과 대본 등 인위적 개입 작업을 최소화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지으며 관찰 예능의 내용을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재현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치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아니 과장 더 나아가 허구의 세계일지라도 현실 혹은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TV속에서 펼쳐지는 ‘진짜 사나이’에는 군대의 관심병사도, 구타나 왕따도 없다. 성폭행과 성추행도 없다. 오로지 어려울 때 도와주고 격려해주며 병영생활을 해 나가는 따뜻한 전우만 넘쳐날 뿐이다. 하지만 고개를 돌려 TV화면 밖 현실속의 군대를 보면 전혀 딴판이다. 21일 발생한 동부전선 GOP의 임모병장 총기 난사사건이 그걸 단적으로 보여줬다.
미디어 제작진은 알아야한다. 뉴스뿐만 아니라 예능, 심지어 픽션을 다루는 드라마마저도 시청자들 인식의 척도가 되고 현실로 수용된다는 것을. 그래서 재구성 과정에서 최대한 현실을 그리고 사실과 진실을 담보하려는 노력을 펼쳐야한다는 것을.
동부전선 GOP 총기사건으로 숨진 유가족과 사건을 일으킨 임모병사 가족의 피눈물을 보면서 그리고 “저런 군대가 어디있나. ‘진짜 사나이’의 병영생활은 완전히 사기다”라는 병장출신 후배 말을 들으면서 ‘여기서 지금 경험하지 않으면 현실이 아니다. 미디어의 모든 현실은 준비된 것이고 그래서 현실의 자격을 갖지 못한다. 거의 모든 것을 미디어에서 얻는 우리에게 현실은 가능한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진실은 가능할까’라는 와이만 교수의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