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계는 1997년 IMF 금융위기 때에는 상대적으로 건전했다.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하고 대규모 정리해고를 감내하면서 위기 극복에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신용카드 사태에 이어 2000년대 중반부터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하면서 가계의 건전성은 크게 악화됐다. 하우스푸어로 대표되는 가계부채 문제는 현재 한국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가계부채가 아직은 견딜만 하고 위기상황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는 의견도 있으나, 과잉 가계부채는 내수 위축, 정상적 금리정책 제약 등 한국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금리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크게 늘어나거나 경기침체 등으로 가계소득이 급감하는 경우 위기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2기 경제팀에서 추진하고 있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로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난다면 위기 가능성은 더 커진다.
둘째 정부부문는 1997년 위기 때 과감한 공적자금 투입 등을 통해 위기 수습에 큰 역할을 했으나 이후 건전성이 나빠지고 있다. 특히 2008년 이후 4대강 등 무리한 토목사업과 감세 등으로 인한 세수 감소 때문에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공식 지표상으로는 견딜 수 있어 보이나 공기업 부채, 기금과 연금의 준비금 부족 등에 숨어 있는 정부 부채가 많다. 복지 등 재정지출 수요가 많은 데다 성장세 둔화로 조세 수입도 늘어나기 쉽지 않다. 정부부문의 건전성은 당장 재정위기가 발생할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기업이나 금융 부문에서 큰 문제가 생겼을 때 과거와 같은 과감한 지원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1997년 IMF사태를 초래했던 기업과 금융부문이다. 기업은 IMF 사태 이후 구조조정과 정부지원 등으로 재무건전성이 좋아졌으나 최근 들어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업을 제외한 한국 상장기업의 평균 부채비율은 100% 정도로 미국이나 일본 등에 비해 외형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그룹 내 상호출자와 순환출자가 많아 실제 부채비율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또한 기업 간 편차도 심해 몇몇 좋은 기업이 평균적 건전성을 좋게 만들어 실상을 왜곡하고 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거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비상장기업이나 중소기업은 상장기업보다 일반적으로 수익성과 재무구조가 더 나쁘다.
금융부문은 2000년대 중반 이후 대형 은행의 수익성과 건전성 등이 세계 우량 은행과 비슷한 수준으로 좋아져 건실해 보였다. 그러나 이는 경쟁을 통한 은행들의 자체 노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은행 신규 설립 금지’를 통해 정부가 기존 은행의 독·과점적 수익을 보장해 주었기 때문했다. 이러한 금융부문의 건전성도 2013년 이후 내수침체의 장기화 등으로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조금씩 악화되고 있다. 여기에 은행들이 대형화된 데다 대형 은행들의 영업구조가 거의 비슷해 한 개 은행의 부실이 전체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쉽게 확산될 수 있다.
종합해 보면 가계부문은 외형적, 실질적으로 모두 건전성이 취약하고, 정부의 재정은 계속 나빠져 위기 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기업과 은행은 외형적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나 조금씩 나빠지면서 불안 요인이 잠재돼 있다. 즉, 한국경제는 복원력이 강하지 못하고 위기에 취약한 상태다. 위기가 오면 고통이 크고 극복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당장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경제의 기본인 복원력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경제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