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체육관, 잊힌 한(恨)과 흥(興)을 찾다 [오상민의 현장]

입력 2015-01-19 06:36 수정 2015-01-1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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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체육관이 50년 만에 새 옷을 갈아입었다. 한때 철거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역사적인 의미와 시민 및 체육인 의견을 적극 반영, 기본적인 골격은 유지한 채 리모델링했다. (연합뉴스)

서울 중구 장충동에 화색이 돌았다. 참 오랜만이다. 50년 만에 새 옷 갈아입은 장충체육관 때문이다. 리모델링 개시부터 재개장까지 꼬박 2년 8개월이 걸렸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한국 체육계는 이 2년 8개월이란 시간 속에서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잊힌 한(恨)과 흥(興)에 대한 기억과 가치다.

장충동은 역사적으로 한(恨)과 흥(興)이 극명한 장소였다. 뼈에 사무치는 아픈 역사와 가슴 속 응어리를 털어내는 환희가 교차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1895년은 일본 자객들부터 명성황후가 시해된 슬픈 역사를 간직한 해다. 당시 궁내부 대신 이경직, 시위대장 홍계훈 등 많은 장병들은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았고, 이에 고종은 1900년 11월 그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지금의 장충단공원에 사당을 지었다.

장충동의 슬픈 역사는 그렇게 역사 속 한 페이지에 한(恨)으로 남아 120년 이란 세월을 견뎌왔다. 하지만 1963년 건립된 장충체육관은 한국 체육사에 숱한 감동과 환희를 안기며 역사 속에서 희미해진 한(恨)을 흥(興)으로 승화시켰다.

김기수는 1966년 6월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전에서 1960년 로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2-1 판정승으로 꺾고 한국 프로복싱 사상 첫 세계챔피언에 올랐고, ‘박치기왕’ 김일은 1967년 4월 세계 프로레슬링 헤비급 챔피언이 됐다.

▲326억원을 투입해 지하 2층을 신설, 주민들의 생활체육공간으로도 활용될 예정이다. 총관람석은 이동식 1324석을 포함해 4507석이며, 종전 46㎝이던 객석의 폭은 51㎝로 늘렸다. 좌석엔 팔걸이를 설치해 쾌적한 관람 환경을 조성했다. 장애인 휠체어석도 마련했다. (연합뉴스)

스포츠 스타의 산실이기도 했다. 1983년 출범한 농구대잔치와 민속씨름을 통해 이만기, 이봉걸, 이준희 등 천하장사가 줄줄이 탄생했고, ‘슛도사’ 이충희와 ‘전자슈터’ 김현준의 3점슛 대결도 연일 명승부를 이끌어냈다. 또 1984년 시작된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는 ‘배구계 원조 스타’ 장윤창과 강만수가 거포 대결을 펼치며 여성팬들을 배구코트로 불러 모았다.

장충체육관 주변은 장충동족발골목이 형성되면서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과 입맛을 동시에 사로잡은 애환의 장소가 됐다. 하지만 장충체육관의 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2000년대 이후 노후 시설로 인한 갖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키며 잠실체육관과 잠실학생체육관에 밀려 스포츠 경기장으로서의 위상을 조금씩 잃어갔다. 스포츠 경기를 대신해 각종 공연과 문화 행사로 빈 시간을 채워야 했다.

이에 장충체육관 운영주체인 서울시설공단은 장충체육관 철거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반세기 동안 한국 체육계를 이끌며 한(恨)을 흥(興)으로 승화시킨 장충체육관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서울시설공단은 장충체육관이 국내 최초 실내경기장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50년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역사와 추억을 간직한 시민들의 공간이라는 점을 적극 반영, 기본 뼈대는 유지한 채 리모델링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장충체육관의 지난 50년은 한국 체육사 50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충체육관이 겪을 앞으로의 50년은 한국 체육의 미래 50년이다. 지금 한반도는 개발주의에 이끌려 무분별한 개발이 강행되고 있다. 지난 2007년 수많은 시민과 체육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거된 동대문운동장도 개발주의의 희생양이다. 80년 역사 속에서 숱한 감동과 환희를 안긴 동대문운동장의 잊힌 한(恨)과 흥(興)을 찾지 못한 채 우리 기억 속에서 싸늘하게 지워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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