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최근 이슈는 바로 롯데그룹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전격 해임한 진짜 이유가 관심의 초점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저마다 다양한 관측을 내놓고 있지만, 이 가운데 신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경영일선에서 잠시 멀어지게 해 차남인 신동빈 한국 롯데그룹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위한 시간을 벌어줬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즉 신동주 부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 입김을 넣지 못하도록 잠시 일본 그룹 경영일선에서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한·일 롯데그룹이 얽혀있는 지배구조 특성상 신동주 전 부회장이 독자적으로 형제 간 계열분리 작업을 시작할 경우, 신동빈 회장의 국내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상당히 시끄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동주 전 부회장 계열분리 행보 가능성= 신 총괄회장은 지난 2007년 4월 롯데홀딩스가 일본 주력 계열사를 지배하고 롯데전략적투자라는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비주력 계열사를 완전히 지배하는 식으로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를 탈바꿈시켰다.
롯데홀딩스와 롯데전략적투자의 연결고리만 끊어내면 일본 롯데그룹의 계열분리는 쉽게 완성되는 구조다. 일본 롯데그룹에서 한국 롯데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정점에 있는 호텔롯데로 이어지는 출자구도 역시 일본 비주력 계열사를 지배하는 롯데전략적투자 중심으로 재편되게 된다.
일본 롯데그룹의 형제 분할 구도의 밑그림이 완벽하게 그려진 것이다. 특히 일본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은 한국 롯데그룹의 계열분리의 신호탄이기도 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이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에서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로 이어지는 출자구도가 있기 때문이다. 롯데홀딩스가 지배하는 일본내 특수목적회사인 일본L2투자회사는 국내 롯데알미늄와 롯데로지스틱스의 최대주주다. 한국과 일본의 롯데그룹 지배구조를 살펴보면 신격호 회장은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을 형제 간 동시 계열분리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가운데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의 체질 개선을 위해 독자적으로 사업구조개편을 추진하려했던 정황이 확인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식품 전문지인 일본제빵신문과 신춘특별인터뷰를 가졌고, 인터뷰 내용은 2015년 1월호에 실린 것으로 확인됐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일본그룹의 영업내용을 검토하고 경영의 전환기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독자적인 사업구조 개편과 성장을 위한 신속한 계열분리를 원했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한국 지배구조 개편 위한 시간 필요했나= 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2년부터 계열사들의 지분을 정리하는 등 복잡한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일감 몰아주기와 제2롯데월드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는 등 그룹 안팎의 고민거리로 지배구조 개편작업 속도는 더뎌졌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측 간섭 없는 독자적인 국내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원했고, 신동주 전 부회장은 성장을 위해 조속한 계열분리가 필요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형성된 형제 간 계열분리 구도를 신속하게 완성하려 했다면 신동빈 회장은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중간 지주사격인 롯데알미늄과 롯데제과 등을 통해 이뤄진 국내 계열사간 순환출자 구조 해소를 위한 지주사전환 작업이 더욱 더뎌질 뿐만 아니라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의 직함 변화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06년 신동빈 회장과 신동주 전 부회장은 동시에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직에 올랐다. 이후 신 총괄회장은 지난 2011년 신동빈 회장에게 한국 ‘롯데그룹 회장’ 직함을 물려줬다.
반면 신동주 전 부회장은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직과 롯데상사의 대표이사직만을 유지할 뿐 회장 승계에 대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이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복잡한 국내 그룹 계열사들의 지배구조 개편을 신동빈 회장이 주도할 수 있도록 형제간의 암묵적인 룰을 정해 준 것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자신이 짜놓은 승계구도에 변화를 가할 수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독자적 행보에 잠시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신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경영일선에서 잠시 배제시키면서 신동빈 회장에게 국내 계열사의 지배구조 개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는 관측을 낳는 대목들이다. 신동빈 회장이 통제할 수 있는 국내 그룹 계열사들의 등기임원직에 신동주 전 부회장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는 것도 신 총괄회장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사안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 승계구도에서 배제된 것이 아니라 국내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총괄회장이 잠시 선을 그어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