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디플레이션 우려를 털어놓은 가운데 정부가 재차 낙관적인 전망을 쏟아내면서 상황을 호도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한국 경제가 옆으로 횡보하는 답답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걱정이 크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저물가에 대해 “서민 입장에서 물가가 떨어지면 참 좋지만 지난 2월 물가는 담뱃값 인상분을 빼면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이는 한 달 전만 해도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했던 최 부총리가 사실상 첫 ‘마이너스 물가’에 직면하면서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최 부총리는 지난달 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하락하는 것”이라며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디스인플레이션(낮은 물가상승률 지속) 상황”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디플레 우려가 확대되면서 정작 기재부는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같은날 대구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 장관의 발언에 대해 “경기활성화 대책을 안 하고 장기 방치하면 일본이 자기도 모르게 디플레이션 국면으로 갔듯이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 최근 저물가 행진에 대해 “수요부진보다는 유가하락 등 공급 요인에 의한 것이어서 디플레이션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기재부 안팎에서도 경제활성화를 통한 내수 회복으로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답습하는 양상이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국제유가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가 2.3% 올랐기 때문에 현재의 단계를 디플레이션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수요 측면 요인도 일부 있지만 상당 부분이 국제유가 등 공급 측면에서 기인하고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5%로 물가 하락을 의미하는 디플레이션과 거리가 있다”며 사실상 사태 진화에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곤두박질 수준인 연초 우리 경제지표는 모두 디플레이션 초입 단계임을 방증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1997년 7월 0.3% 상승을 기록한 이후 15년 7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물가를 비롯해 22개월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산업생산, 두달째 이어지는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는 모두 경기침체를 알리고 있다.
또 개인 소비활동 지표인 소매판매가 전월보다 3.1% 줄었고 기업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7.1%나 감소했다는 점은 내수가 마중물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정부가 디플레를 인정하고 전향적인 통화·재정정책을 펴야 하는데 시장 상황을 고려해 대증적인 멘트에 급급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경기가 문제없다면서도 기준금리 인하를 흘리는 등의 주먹구구식 정책은 기업과 실물경제의 괴리를 가져올 뿐이라고 제언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최 부총리가 그간 최저임금 인상 등을 강조하며 내수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기업들의 호응이 없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정부정책을 불신한다는 것”이라며 “지금은 장밋빛 전망보다 때를 놓치지 않는 과감한 정책이 절실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