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귄터 그라스가 독일 북부 도시 뤼베크의 한 요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13일(현지시간) 외신들이 보도했다.
1927년 발트해 연안의 단치히에서 태어난 그는 독일 전후 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출세작인 ‘양철북’으로 이름을 알렸다.
그라스는 독일계 아버지와 슬라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17세 때는 나치군(나치 친위대)에 들어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훗날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2006년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나치 복무 사실을 뒤늦게 고백했다. 그라스는 15세가 되던 해 독립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잠수함 복무를 신청했으나 거절당했고 이후 노동봉사자로 군부대 지원 업무를 하다 17세에 무장 나치 친위대 제10기 갑사단으로 발령받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여론은 그를 위선자라고 비판했다. 그의 나치 복무가 ‘징집이냐, 자원이냐’에서부터 그에게 부역 혐의를 지울 수 있느냐까지 논란이 지속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비판적 작품과 진보적 정치행동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과 예술 세계는 20세기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그는 뒤셀도르프 미술 학교를 거쳐 1952년 베를린 예술대학으로 옮기면서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파리에서 조각과 그래픽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설 쓰기에 매진했다.
1959년 출판된 ‘양철북’은 그를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만들었다. 그라스는 양철북으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았고 1979년 영화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칸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
양철북은 1920년대에서 1950년까지의 독일 역사를 주인공인 오스카 마체라트의 시점으로 그림 작품이다. 오스카는 전후 독일의 비참한 모습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 성장을 멈추기로 결심,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당시 문학계는 비정상적인 아이의 눈에 비친 정상인의 세계가 더욱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이채롭게 구성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라스는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그는 2002년 한국을 방문해 “판문점은 한 편의 부조리극 같다” “북한 지원은 무조건 효과 있다”고 발언했다.
한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그라스의 사망에 조의를 표하며 서한을 통해 “그라스는 독일 전후 역사를 보듬고 주조하는 데 예술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헌신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