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는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특허청 등 3개의 정부기관과 12개 공기업, 18개 준정부기관, 22개 공공기관을 소관하는 국회 최대 상임위 중 한 곳이다. 산업과 에너지 등 국민 생활경제와 밀접한 민감한 문제를 주로 다루며,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통상도 총괄하고 있다.
최근 심사 중인 법안 중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다. 명칭과 달리 대부분은 규제 법안이다. 백화점을 비롯해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유통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골목상권이 위협받고 있는 데 따른 시대적 흐름이다.
하지만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 등 대형유통업체에 규제가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자유시장 경제의 원칙이 훼손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는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한 노력 대신 대형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통해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탁상행정에서 비롯된 조치다. 또 지역구 표심을 얻기 위한 국회의원들의 포퓰리즘도 숨어 있다.
한 언론이 19대 국회 시작 때부터 올 초까지 산업위 소속 의원들이 발의한 583건의 경제법안을 분석한 결과 무려 172건이 경제민주화 법안으로 분류됐다. 경제민주화 법안은 상대적으로 약자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혜택을 늘리고 대기업을 규제함으로써 경제의 균형을 이루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반면 기업친화적 법안은 82건에 불과했고, 나머지 329건은 중립 성향을 나타냈다.
산업위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보면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주도하고 새누리당이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데, 선출직인 의원들 입장에선 지역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여당임에도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법안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 계류 중인 27개 유통법, 대부분이 규제법 = 산업통상자원위에 따르면 14일 현재 위원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총 27개다. 상당수가 대규모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대표적인 게 전통상업보존구역 확대법과 가구전문점을 규제하는 이른바 ‘이케아 방지법’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이 대표발의한 유통법은 전통상업보존구역의 범위를 전통시장이나 전통상점가의 경계로부터 현행 1km 이내에서 2km 이내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최근 백화점의 성장세가 꺾이고 해외 명품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유통 대기업들이 대형 아웃렛이나 상설할인 매장을 경쟁적으로 개설하기 시작, 전통시장과 중소상인들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이유에서다.
새누리당 손인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된 ‘이케아’ 등에 대해서도 대형마트나 준대규모 점포와 같이 영업 시간을 제한하고 의무 휴업일을 지정하는 것이 골자다.
전문점이라도 특정 품목에 특화된 정도가 낮고 생활물품이나 잡화 등을 함께 취급하는 경우에는 주위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대형마트와 별반 차이가 없어 함께 규제하고 변칙 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게 발의 배경이다.
이외에도 △준대규모 점포의 정의, 등록 및 전통상업보존구역의 지정에 관한 유효기간 삭제(백재현 의원)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일 위반 과태료를 2억원으로 상향 조정하고 영업정지 명령 위반 시 등록 취소(김제남 의원) 등의 법안이 심사 중이다.
◇자율경쟁, 소비자 권리도 보호 위해 정부개입 줄여야 = 계류 중인 규제 법안은 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해당 유통업체와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규모 점포에 납품하는 업체들 또한 대부분 중소업체다. 대규모 점포를 규제하려다 보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산업위 전문위원은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이종걸 의원이 발의한 전통상업보존구역 확대와 관련, “대규모 점포 등의 영업의 자유, 중소유통업자 보호, 소비자의 선택권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정부는 전통상업보존구역의 지정 확대와 관련한 논의를 위해 규제의 필요성과 목적의 실현 가능성, 수단의 적정성, 시행에 따른 비용편익 등에 대한 분석을 실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보고서는 이케아 방지법에 대해선 “소비자 선택권 및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으므로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법률·정책 감시 소비자단체인 컨슈머워치는 지난 3월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유통산업발전법 심의 모의국회’를 열어 이들 법안을 규탄하기도 했다.
컨슈머워치 측은 이 자리에서 “정치권은 중소상인 보호라는 이름 아래 유통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소비자 선택권’ 제한에 대한 우려 목소리는 들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통상업보존구역을 2km까지 확대할 경우 대형마트가 신규로 오픈할 수 있는 입지는 ‘북한산 자락’이나 ‘한강 마포대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며 “마트에 가기 위해 한강을 건너고 산에 오르는 진풍경이 연출될 것”이라고 정치권의 입법안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