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이 끝날 무렵 누군가가 승화원(화장장) 입구로 안내했다. 그리고 맨 앞줄에 세웠다. 거기서 상주가 안고 나올 유해를 맞으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금세 둘째 줄, 셋째 줄로 밀리고 말았다. 정치인들이 계속 앞줄로 비집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연신 밀리는 모습에 뒤에 있던 젊은 참모들이 소리쳤다. “실장님, 앞으로 가세요. 앞에서 모시세요.” 결국 이들에게 떠밀려 다시 앞줄로 나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금세 또 밀리고 말았다. 그러자 누군가가 다가와 다들 들으라는 듯 소리쳤다. “여기, 정치판 아닙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그러고는 내 손을 잡아끌어 다시 앞줄에 세웠다.
그야말로 ‘정치판’이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이 통곡을 하는 상황에서도 자리다툼을 했다. 밀고 당기고, 고함도 오갔다. 그런 와중에 생각했다. ‘이들은 왜 누구를 위해 이러는 것일까? 고인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아니면 자신들을 위해서?’
지난 5월 23일. 한 그룹의 학생들을 데리고 단골 칼국수 집을 찾았다. 몽양 여운형 선생이 신문사를 하던 자리에 있는 집이다. 막 들어서는데 얼굴을 알아본 손님 한 분이 물었다. “어? 오늘 6주기인데 안 내려가셨어요?” “예. 안 갔습니다.” “안 간 게 아니라 못 가신 거죠?” “아니, 안 갔습니다.” “왜요?” “글쎄요. 꼭 무슨 정치 행사 같아서요. 왠지 부담스럽고 낯설어요. 그래서 여기서 학생들하고 노 대통령과 몽양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그랬다. 정치인 중심의 분위기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추모객들, 그리고 그들 사이에 흐르는 현실정치의 냄새와 정치적 언어들이 불편했다. 그래서 몇 년간 가지 않았다. 대신 아내와 함께, 아니면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따로 다녀오곤 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장관이나 관료 출신 인사 등 노무현 대통령과 일을 했던 많은 비정치권 인사들이 비슷한 기분을 토로한다. 가기에는 너무 ‘정치판’이고, 그렇다고 가지 않기에는 미안하고 죄송한 행사라 한다.
올해도 큰 변화가 없었던 모양이다. 정치인들이 몰려들고, 여의도의 긴장이 그대로 재현됐다. 심지어 고인의 이름으로 일부 정치인을 야유하고, 물세례까지 퍼붓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철학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깊다. 그를 무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그를 지지하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을 수 있다. 특히 퇴임 후 다듬어진 생각과 철학은 더욱 그렇다.
사실 마지막 1년, 한 달에 두 번 정도 대통령을 찾았다. 재임시절과 또 다른 그의 생각에 갈 때마다 다시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의 ‘정치하지 말라’는 글만 해도 그렇다. 집권 초기의 ‘정치하지 말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유언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한 번 읽어 보라. 그 전과 확연히 다른 그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를 하는 분들에게, 또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강한 분들에게 말하고 싶다. 고인을 함부로 해석하지 마라. 고인의 이름으로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또 그 이름 위에 함부로 올라타지도 마라. 자칫, 그의 이름으로 그를 욕되게 할 수 있다.
이제 그를 놔줘야 한다. 올바른 비전과 전략으로, 그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도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는 특정 정치집단의 노무현이 아닌 국민의 노무현이 될 수 있다. 또 그의 생각과 철학이 국민 모두의 꿈과 미래로 승화될 수 있다.
그러나 매년 많은 정치인과 지지자들이 이러한 노력은 뒤로한 채 봉하마을로 달려가고 있다. 6년 전 화장장 앞에서, 체면 불구하고 앞줄로 파고들던 그 정치인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야유와 물세례의 ‘정치판’을 만들거나 방관하고 있다. 묻고 싶다.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이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