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최근 국제외환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엔저 현상을 묵인하면서 글로벌 환율전쟁을 부채질하고 있다.
도쿄외환시장에서 2일(현지시간) 달러·엔 환율은 장중 한 때 125.07엔으로 심리적 저항선인 125엔선을 돌파하면서 지난 2002년 12월 이후 12년 반만의 최고치(엔화 가치는 하락)를 기록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이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과 일본의 금리차가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로 엔화 매도·달러 매수 움직임이 강하게 일고 있는 영향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가 오는 9월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점치고 있다. 반면 일본은행(BOJ)은 낮은 인플레이션에 추가 경기부양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신문은 헤지펀드 등 해외 환투기 세력들이 대량의 달러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어 엔화 약세가 올 여름까지 지속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엔저 가속화의 원인으로 일본 증시와 엔화 환율을 연동하는 ‘아베 트레이드’를 꼽기도 했다. 그동안 일본 주식을 매입했던 투자자들이 엔화 약세에 따른 위험을 줄이기 위해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따른 트렌드를 활용해 일본 주식을 더욱 매입하고 엔화는 매도한다는 것이다.
또 전문가들은 일본의 외환 개인투자자인 일명 ‘와타나베 부인’의 움직임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들은 그동안 외환 거래에서 엔을 매수하고 달러를 매도해왔는데 최근 엔저 압박을 견디지 못해 일제히 엔화 매도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사이토 나카유지 크레디아그리콜 전무이사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아베 트레이드’를 지속할 것”이라며 “이들 사이에서는 BOJ의 추가 금융완화에 대한 기대도 만만치 않다. 연말까지 달러·엔 환율이 130엔선으로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일본 내수와 수출기업 모두 환율 변동에 대응 체질을 갖췄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엔저를 계속 외면할 것이라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유니클로’ 브랜드를 보유한 아시아 최대 의류 소매업체 패스트리테일링은 엔저와 높은 원자재 가격을 이유로 가을·겨울 신상품 가격을 2년 연속 인상하기로 했다. 한편 혼다 등 제조업체는 자국 생산비중을 높여 엔저에 따른 수출확대 혜택을 노리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이날 아베 총리와 세계경제를 논의하기 위한 정기회동을 가진 직후 기자회견에서 “물가 안정이 우선순위”라며 “환율의 수준과 속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엔저 현상에 대해선 닫았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도 “환율에 대해서는 발언하지 않겠다”며 ‘노 코멘트’ 입장을 고수했다.
공식적인 견해와는 별도로 일본 정부 내에서는 엔저에 따른 해외 여행객의 급증과 수출 증가 등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BOJ도 엔저로 수입물가가 오르면 물가상승률 목표 2% 달성에 도움이 된다.
시장에선 엔화 약세로 피해를 입고 있는 무역 상대국의 대응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