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언급한 한유(韓愈) 이야기를 계속한다. 한유는 자신의 고질적인 다섯 가지 결함을 ‘오궁(五窮)’이라고 했다. ‘다섯 귀신’[五鬼] 또는 ‘다섯 근심’[五患]이라고 바꿔 표현하기도 했다. 첫째 지궁(知窮). 둥글둥글한 걸 미워하고 반듯한 걸 좋아하며 간사함을 싫어한다. 둘째 학궁(學窮). 두루 배우고 널리 생각하려 한다. 셋째 문궁(文窮). 문장이 괴이해 널리 쓰이지 못하고 혼자만 즐거워한다. 넷째 명궁(命窮). 이득을 챙길 때는 남 뒤에 서고, 질책을 당할 때는 남 앞에 나선다. 다섯째 교궁(交窮). 친구를 위해서는 심장을 도려내고 간조차 빼내주려 한다.
그를 굶주림과 추위에 떨게 한 이 다섯 가지는 사실 강한 자부심과 기개의 표현이었다. ‘행난(行難)’이라는 글에서는 “내 생각을 버리고 남의 말을 따르는 것이 고역”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올곧고 매운 선비였다.
섬서[陝西]성의 법문사(法門寺) 호국진신탑(護國眞身塔)에는 불골(佛骨, 부처의 손가락뼈)이 봉안돼 있다고 알려졌다. 30년마다 탑문이 열리는 해에는 대풍이 든다고 했다. 불교신자인 헌종이 불골을 맞이해 오라고 하자 법문사-장안 간 수백리 길에 난리법석이 벌어졌다. 형부시랑이던 한유는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올려 이 ‘광란의 행사’를 당장 중지하고 불골을 물이나 불 속에 집어 던지라고 했다.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으나 아끼는 이들이 간언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
유종원(柳宗元·773~819)이 죽었을 때는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에 이렇게 썼다. “선비의 의리는 궁핍할 때 비로소 드러난다. 요즘 사람들은 (중략) 죽어도 변치 말자고 맹세한다. (중략) 하지만 일단 머리털 같은 자그마한 이해관계에 부딪히면 모르는 사람 취급한다. 함정에 빠져도 구해 주기는커녕 되레 밀어뜨리고 다시 돌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