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5일(현지시간) 국민투표에서 ‘찬성’이 우세할 것이라고 전망했던 전문가들은 투표 결과가 긴축안 부결로 나오자 그리스가 구제금융 재협상을 위한 가시밭길에 들어섰다고 우려하고 있다. 유라시아그룹의 무즈타바 라만 유럽연구부문 대표는 “그리스 국민은 현재 자신의 유서에 서명을 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경종을 울렸다.
7일 예정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주축으로 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에서는 그리스의 채무탕감이 화두가 될 전망이다. 치프라스 총리가 속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은 지난 1월 정권을 잡은 이후 줄곧 채무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당시 채무탕감을 실시했던 것과 같은 ‘데자뷰’와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주 보고서를 통해 그리스의 재정상태는 새로운 금융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치프라스 총리는 “부채가 지속 가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30% 채무탕감과 만기 20년 연장”이라면서 IMF 보고서를 근거로 내세우며 국민투표를 앞두고 ‘반대’ 지지를 호소했다. 3년 전 IMF, 유럽연합(EU) 등 국제 채권단은 그리스 재정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금융지원과 부채탕감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오는 2022년까지 그리스의 채무잔액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110% 밑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전제가 붙었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 그리스의 GDP 대비 채무 비율은 177%. IMF는 보고서를 통해 “이 상태로는 그리스의 채무가 오는 2020년까지 150%의 높은 수준으로 계속될 것”이라며 “2022년(110%)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GDP의 3%에 달하는 대대적인 채무경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그리스는 오는 20일 또 한 번 큰 산을 넘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 유로(약 4조4000억원)의 채무를 갚아야 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리스가 ECB의 채무를 상환하지 못한다면 ECB는 그리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프로그램을 중단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그리스는 ‘기술적 디폴트’에서 ‘실질적인 디폴트’로, 또한 그렉시트의 길로 접어들며 경제는 최악의 상황이 불가피해진다.